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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M&A 딜스토리]"섬세하게 조심조심"…치밀했던 SPA 과정⑥ 베인캐피탈 주축으로 구성된 인수구조, 이사회와 쌓은 신뢰감 한몫

윤동희 기자공개 2018-05-31 08:21:19

[편집자주]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글로벌 테크 M&A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 한 거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래규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향후 글로벌 플레시메모리 산업의 지형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같은 임팩트를 잘 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도시바메모리를 경쟁자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속속 뛰어들며 많은 뒷이야기들을 남겼다.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있었다.

이 기사는 2018년 05월 29일 10: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웨스턴디지털(WD)에 독점적 교섭권이 부여됐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 기회는 SK하이닉스가 속한 판게아 컨소시엄에도 동일하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배타적 협상 권리는 없었지만 SK하이닉스로선 자신이 있었다. 평소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도시바 이사회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등 매도인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승기를 잡았다.

도시바 이사회는 2017년 8월 31일, 판게아와 WD, 홍하이 등 세개 컨소시엄과 동일하게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개월 째 우선협상자 지위에 있었던 판게아 입장에서는 김이 빠질 수 있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애플을 새로운 컨소시엄 주체로 끌어들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애플은 재무적투자자(FI)인 베인캐피탈이 섭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도시바 메모리 최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다. 애플은 WD에 비해 정관계 인맥과 영향력이 훨씬 큰 만큼 도시바와의 협상에서 반전의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컨소시엄의 복안이었다.

인수 구조도 일본 시장의 정서와 도시바 이사회의 의중을 십분 반영했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 전면에 나선 것은 베인캐피탈이다. 판게아가 제안한 거래 금액은 당초 거론됐던 2조엔(한화 약 20조 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수금액을 올리거나 연구개발비 4000억엔을 추가로 제공하면서 딜 사이즈가 더 늘어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는 소문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탈, 애플을 필두로 한 고객사 등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약 11조원의 자본을 투입한다. 여기에 6조원 이상의 은행권 대출이 더해져 최종적으로 약 17조원 가량이 도시바 본사로 들어가는 구조다. M&A 규모는 20조원이지만 실제 도시바메모리에 들어가는 돈은 약 17조원이다.

도시바 인수구조
도시바 메모리 투자 구조도(단위: 억엔. 총 1조 9500억엔, 한화 20조 원)

남는 3조원은 모회사 도시바가 메모리 매각대금을 일부 재투자하는 부분이다. 모회사 도시바는 3조원으로 메모리의 보통주를 취득한다. 이 3조원 투자로 처음부터 딜을 주도했던 산업혁신기구(INCJ)나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계약공고에 다르면 추후 INCJ가 도시바 메모리에 투자를 하거나 도시바가 의결권을 이 두 주체에 일정부분 넘길 수는 있으나 일단은 도시바 소관에 맡기기로 했다. INCJ로서는 당장 정책자금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여기에 일본에 기반을 둔 호야도 보통주 취득 주체가 돼 모회사 도시바와 함께 도시바 메모리가 완전히 외자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SK하이닉스는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일본 정책당국의 의중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때문에 총 4조 원을 투자하지만 직접 지분을 취득하지 않았다. 2조5000억원은 베인캐피탈이 조성하는 펀드에 출자한다. 물론 간접적인 지배력은 있으나 유한책임사원(LP) 자격이기 때문에 무한책임사원(GP)의 경영에는 직접 관여할 수 없다.

나머지 1조5000억원으로 도시바 메모리가 발행하는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정도다. 투자규모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베인캐피탈의 프로젝트 펀드가 49%의 의결권을 가지고 도시바 메모리와 호야 등이 51%의 의결권을 가져간다. 만약 SK하이닉스가 CB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15%의 지분율이 생긴다.

새롭게 컨소시엄에 합류한 애플과 시게이트, 델, 킹스톤테크놀러지 등은 경영권과는 거리가 있는 상환우선주(RPS) 형태로 투자를 했다. 약 6조원을 투자하고 매년 이자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받고 10년 뒤에 원금을 상환하는 형태다. 미국기업은 컨소시엄에 합류하며 한미일 연합의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지지 않도록 했다. 사실상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의 핵심 전략적 투자자(SI) 역할을 하면서도 일본기업과 베인캐피탈에 경영권의 상당부분을 내주며 일본 시장에 반감을 사지 않는 구조를 고안해낸 셈이다.

구속력 없는 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판게아는 딱 한달 뒤 도시바 이사회로부터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 통보를 받았다. 통상 SPA 체결을 위해서는 먼저 독점 교섭권을 바탕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수정보완하는 형태로 협상을 한다. 계약 체결의 속도가 도시바 메모리는 통상의 경우와 달랐다. 수개월째 배타적 협상권이 없는 우선협상자 지위로 있다 하루 사이에 계약상대방이 된 것이다. 수년간 이사회와 쌓아왔던 신뢰와 최선의 인수구조가 바탕이 됐다. 2018년 9월 28일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도시바 경영권 인수경쟁의 최종 승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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