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6월 14일 08: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부자될 사람은 결혼할 때 이미 결정됩니다. 강남에 본가가 있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 됩니다."최근에 만난 은행 프라이빗뱅커(PB)가 알려준 부자되는 노하우다. 뭔말인지 이해 못하는 기자에게 PB의 설명이 이어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적으로' 처가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린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아내들이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 손주 키우는 것은 기본. 장보기, 식사 준비, 청소 등 직장에 나가는 딸을 대신해 친정 엄마들이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급하게 야근이라도 하게되면 옆집에 사는 친정 엄마를 부르면 된다.
그래서 신혼집을 고를 때 1순위는 처가의 위치다. 처가와 가까울 수록 좋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사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처가는 멀수록 좋다고 했는데, 지금은 신랑들도 처가 근처에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강남에 처가가 있는 경우 무리해서라도 강남 3구나 분당 등에 신혼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강남의 높은 집값을 반영해 억대의 은행 대출을 끼고 전세를 구하는 경우가 상당수. 이렇게 몇년을 살다 그 동네에서 집을 사게 된다고 한다. 은행 대출은 늘어나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화시설이나 생활편의시설이 좋아 거주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대치동 학원가를 비롯한 교육 환경도 대한민국에서 넘버원이다. 강남에서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좋은 학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다. 실제로 2017년 서울대 일반고 출신 합격자 중 강남구와 서초구의 비중은 3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에 4명 가량은 강남 출신이라는 얘기다. 강남 출신 특목고 비중까지 더하면 절반 이상이다.
그러는 사이 집값은 수억원이 급등했다. 특히 지난해와 올초 상승률은 대단했다. 돌이켜보면 투기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한 투자도 아니었다. 그냥 처가 도움받기 편한 곳이라서 무리해서 들어왔는데 살다보니 집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 현금은 별로 없지만 자산가치는 십수억원을 넘는다. 처가가 고마울 뿐이다.
PB의 말이 이해가 된다. 주변 사람을 떠올려보니 대부분 그랬다. 강남3구나 분당에 신혼집을 구한 친구들은 대부분 그 동네에 집 한채 정도 갖고 있다. 반대로 10년쯤 전 처가가 있는 은평구에 신혼 살림을 차린 친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파트 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일산 근처에 신혼집을 구한 후배는 2년동안 겨우 수천만원 올랐다고 한다. '마용성'이라 불리는 마포, 용산, 성동 지역에 신혼집을 구한 친구들은 최근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래도 강남 3구에 비할바는 못된다.
대치동 학원가가 밀집해 아이들 키우기 좋다는 도곡렉슬 아파트. 2006년 입주를 시작할 당시 20평대 매매가격은 6억원대, 전세는 2억5000~3억원대였다. 대출 받고 무리했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3억~14억원대. 10여년만에 2배 넘게 올랐다.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혼할 때 왜 강남에 집을 구하지 않았을까. 후회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단지 '부의 대물림'에 대해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PB가 말한 '강남 처가 이야기'도 결국 부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다.
20년전 한국 사회를 할퀴고 간 IMF 경제위기 이후 최대의 문제는 중산층 붕괴와 빈부격차 심화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현재의 지나친 불평등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와 빈곤이 세대를 넘어서 대물림 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을 하기 어려운 사회가 곧 '장벽 사회'다. 장벽 너머에는 기득권층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어, 장벽을 넘어 성공 가도에 진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청와대 주요 참모들과 정부 고위관료, 대기업 임원, 대학 교수, 법조인, 의사 등 사회 유력 인사들의 강남 거주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강남으로 대변되는 부의 대물림 현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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