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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SCM 점검]'화이트리스트 배제'…어떤 업종, 어떤 기업 타격받나기계·화학·철강 수입업체 영향, 규제 품목 日 의존도 높아

구태우 기자/ 김성진 기자공개 2019-08-02 19:36:29

[편집자주]

우리 경제가 일본의 일부 품목 무역 제한 조치로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에 들어가게 됐다. 정부와 삼성전자는 물론 아직 일본의 수출규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대기업마저도 파장 확산에 촉각을 세운다. 정치적 갈등이 이유가 됐지만 대외의존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취약함도 근본 원인으로 거론된다. 수십 년간 누적돼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더벨이 부품·소재·장비 산업 대외의존도가 높은 업종·기업을 꼽아 공급망관리(SCM) 현황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8월 02일 19: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본 정부가 2일 수출 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26개 국가만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 두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수출규제에 나설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국내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일본은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이 공포되면 21일 이후인 이달 하순께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본의 이번 조치에 대해 "이기적 민폐행위"·"인류 보편적 가치 위반" 등 전례없이 강경한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다. 이어 "단호하게 상응조치를 하겠다"고 공언, 앞으로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다각도의 '맞대응'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한일관계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특단의 돌파구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극도의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 대 강'의 대치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이번 조치로 어떤 품목이 수출 규제 대상에 올랐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떤 업종과 기업이 수출 규제의 영향권에 포함됐을지 살피는 분위기다. 일본의 '캐치올(모든 품목 규제) 대상 품목표'에는 △광물 △화학공업 △플라스틱 △섬유 △금속 △항공기 등 제조업과 연관된 다수의 업종이 이름을 올렸다. 통관 절차를 강화해 수출을 규제하는 게 이 제도의 목적인 만큼 제조업종을 총망라하고 있다.

'캐치올(Catch-all) 규제'란 특정 품목만을 규제하는 '리스트 규제'와 달리 개별적 수출허가 대상 품목의 범위를 정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수출 품목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제를 말한다. 얼마전 있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리스트 규제'라고 한다면 이번에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캐치올 규제'에 해당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늦게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갖고 "이번 백색국가 배제 조치로 인해 관련되는 전략 물자의 수는 1194개"라며 "총 159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1053개 품목은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고,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아 제외됐다. 소량 사용 또는 대체수입이 가능한 품목도 뺐다. 그럼에도 어떤 품목이 구체적으로 수출 규제 대상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국내 여러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와 정부의 발표 등을 종합하면 우선 기계 업종의 영향이 예상된다. 기계 산업은 일본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분야 중 하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도 이같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대일(對日) 수입에서 '캐치올 규제' 대상 품목은 6275개(HS코드 10단위 기준)에 달했고 2018년 수입 실적이 없는 품목을 제외하면 4898개였다. 이 중 대일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707개, 100%인 품목은 82개였다. 기계 산업은 이 가운데 142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기계 분야 품목을 산정한 수치다. 기계 산업은 이미 백색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됐던 분야다.

기계 분야의 영향이 큰 건 '캐치올 대상 품목표'가 모호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표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의 '별표 1로' 규제 대상을 정하기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다. 캐치올 대상 품목표에는 대량살상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 56가지 품목이 담겼다. 식료품과 목재를 제외한 전 품목이 담겨있다. 기계류와 철강재 등 일부 품목은 구체적인 명칭을 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정한 탓에 대상을 광범위하게 확장할 수 있다.

기계산업

품목표는 △원자로 △보일러 △기계류 △이들의 부분품을 규제 품목을 분류하고 있다. 사실상 기계류에 들어갈 수 있는 전 부품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일본의 비전략 물품 포함 품목에 따르면 △컴퓨터 제어(CNC) 기계 △정수압 프레스 △진동 시험 시스템 △원심분리기 △대형진공 펌프 △유동성형기 △방사능 로봇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 품목은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다. CNC 기계는 대일 의존도가 91.3%에 달한다. 국내 기업 중 일본으로부터 CNC용 부품을 수입하는 업체는 한화정밀기계와 화천기공 등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금속 절삭·가공 기계의 대일 수입 비중은 90%를 넘는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가시화될 경우 공작기계 관련 산업의 피해도 예상된다.

화학공업 분야도 이번 조치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이다. 규제 대상 품목표에 따르면 각종 화학공업 생산품(38류)도 규제 대상 품목이다. 반도체 및 관련 화학물은 일본에서 수입 비중이 가장 큰 화공품으로 꼽힌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리포트'에 따르면 염화비닐과 큐멘은 일본에서 전량 수입한다. 벤젠과 시클로헥산은 99.8%, 수산화 니켈과 염소 등도 97.8% 이상 수입에 의존한다. 이외에 X선용 필름은 99.5% 수입하고, 610mm 이하 사진필름도 90% 이상 수입하고 있다. 방사성 원소 등도 비전략물품에 포함돼 의료용 방사선 원소도 피해가 점쳐진다.

화학

철강 분야는 일본산 철강재를 수입하는 회사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는 일본의 조선용 후판,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받는다. 품목표에 따르면 △철강재 △니켈 △알루미늄 △납 △아연 △주석 등도 수출을 금하고 있다. 일본산 철강재를 수입해 사용하는 조선사, 완성차 업체들도 일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원재료 공급망을 다양화한 만큼 영향은 미미하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철강 관련 품목 중 의존도가 50% 넘는 물품은 54개에 달한다. 국내 철강사와 조선사는 일본의 조치로 입을 피해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산 철강재의 의존도가 큰 기업은 영향권에 있다. 완성차 부품사와 조선업체는 일본산 특수강을 받아 선박 및 차량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철강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로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라는 게 산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수출 규제가 가시화될 경우 생산에 중차대한 차질이 빚어진다. 제조업체의 경우 '서플라이 체인'에 맞춰 제품을 생산한다. 주요 원재료가 바뀔 경우 생산을 중단하거나, 대체재를 마련해야 한다. 중후장대 산업이 부진한 상황에 이번 조치로 피해를 입게 되면 기업의 체감도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부품 및 소재 산업의 경쟁력과 점유율을 고려하면 자동차·산업기계 기업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며 "규제 대상 품목의 범위가 어느 정도이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치로 대일 부품 소재 조달에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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