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8월 23일 11: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장(IPO)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입니다."최근 만난 한 의료기기 업체 대표의 넋두리다. 이 업체는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전자약(electroceuticals) 관련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바이오텍이다. 대표는 상장을 해도 원하는 밸류에이션이 안되면 투자금 확보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바이오 시장의 투심이 신약개발 쪽으로만 몰리면서 의료기기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같은 바이오 업체라도 주특기가 신약인지 의료기기인지에 따라 기업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신약은 성공하면 그 시장가치가 월등하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과도한 기대심리가 반영돼 있는 경우가 많다. 임상 3상 이후 품목허가까지 약 5% 미만의 성공률이지만 주식 시장은 이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의료기기는 상대적으로 뻔한 시장이다. 제조업 기반이기 때문에 판로와 매출액 전망치가 명확하다. 하지만 이 명확성 때문에 역설적으로 밸류가 디스카운트되는 경향이 있다.
올해 상장한 수젠텍과 덴탈CT 제조업체 레이가 예다. 수젠텍의 경우 체외진단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반공모에서는 흥행(1.48:1)에 실패했다. 아직까지 영업손실을 내곤 있지만, 3년 구간 매출의 상승세가 연평균 100% 이상이다.수젠텍은 공모가 하단인 1만2000원에 상장해 지금은 57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수젠텍의 사례를 지켜 본 의료기기 업체들은 고민의 기로에 서 있다. 오죽하면 수젠텍도 상장 과정에서 "의료기기 베이스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의 스탠스로 어필하려고 한다"고 전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전자약 의료기기 업체는 상장 자체를 원점에서 고민하고 있다. 코넥스에서 이전상장을 준비하는 의료기기업체 대표도 '밸류' 문제 때문에 IPO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 주식 시장에선 신약개발, 특히 항암제 개발 업체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을 당연시해 왔다. 명확하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기술에 가점을 줘 온 셈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규모는 4000억 달러(485조원) 규모다. 연평균 6%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 넓은 시장에서 한국 의료기기의 수출액은 3조6000억원(2018년)으로 1%도 되지 않는다.
의료기기는 신약개발과 달리 안전성 기준만 충족하면 품목허가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인허가의 속도도 신약에 비해 빠르다. 초음파 1위 삼성메디슨, 임플란트 1위 오스템임플란트 등 우수한 기업들도 즐비하다. 제조업 노하우와 뛰어난 IT 기술을 감안하면 오히려 더 빠른 성장도 가능하다. 자본시장에서도 의료기기 디스카운트를 다시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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