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기회 놓치고 기사회생한 난임 전문 제일병원 [Deal Story]부지개발·공동투자 제안 거절…우여곡절 끝 정상화
최익환 기자공개 2019-10-10 07:01:00
이 기사는 2019년 10월 04일 07: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17년 봄, 당시만 해도 서울시 중구 묵정동에 위치한 제일의료재단(제일병원)은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산달을 앞둔 산모와 보호자는 물론 난임치료에 정통하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며 병원 경영은 양호한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이때도 제일의료재단의 경영진은 경영 정상화 방안을 찾고 있었다. 이사장 일가에서 벌어진 집안싸움의 영향으로 가족들은 이미 갈라선 상태였고, 2008년 이재곤 이사장이 취임한 뒤부터 무리한 시설확장으로 부채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10년 사이 제일병원에는 새 건물 세 곳이 생겨났고 기계식 주차타워까지 들어섰다.
이때 제일의료재단을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국내의 한 PEF 운용사였다. 이 운용사는 병원과 헬스케어산업을 테마로 한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는 곳으로, 대표가 직접 제일의료재단을 찾아 경영 정상화 전략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제일의료재단의 과도한 부채 등 상황을 파악한 PEF 운용사는 시급한 경영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PEF 운용사, 부지매각 후 강남이전·해외기업 공동인수 제안
이 PEF 운용사가 내놓은 경영 정상화 방안에는 △부지매각·개발 후 강남권 이전 △해외 난임치료 벤처기업 공동인수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던 당시 제일병원이 위치한 부지의 가치는 최대 2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었고, 이미 병원용지로 개발이 가능한 부지도 남아있었다.
핵심은 당시 글로벌 M&A 시장에서 관심을 모으던 벤처기업의 공동인수였다. 영국에 위치한 이 매물은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난임치료기술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연합(EU)에 속해있지만 각국마다 의료법령이 다른 현실 속에서, 프랑스 등 난임치료가 제한된 국가의 환자들을 흡수하는 우량기업이었다.
이 PEF 운용사는 제일의료재단과 함께 매물을 공동인수해 난임치료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으로 진출해 제일병원의 브랜드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제안에 제일의료재단은 수 차례 이사진 회의를 열며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수 개월이 지나도록 제일의료재단의 연락은 없었고, 결국 PEF 운용사가 제시한 경영 정상화 방안은 흐지부지됐다. 그러는 사이 인수자를 찾지 못하던 인수대상 벤처기업 역시 새 주인을 찾았다. 경영진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제일의료재단 경영 정상화의 첫 기회가 날아간 셈이었다.
◇동국대·넥슨재단 등 접근…인력승계·부채 부담에 '손사레'
첫 기회를 놓친 제일의료재단은 이사진 추천권한을 넘기는 방식의 M&A를 시도하게 된다. 제일의료재단이 참고한 사례는 2017년 호텔롯데의 보바스기념병원 인수였다. 당시 회생절차를 통하긴 했지만 호텔롯데는 무상출연금과 대여금을 법인에 제공하고 이사진 구성 권한을 가져왔다. 이사진 구성권한은 의료법인 등 비영리 법인의 사실상 경영권으로 평가된다.
제일의료재단은 이를 위해 부지가 인접한 동국대학교와 접촉을 시작했다. 동국대학교는 협소한 서울캠퍼스 부지를 확장하고, 서울시내에 의대와 연계한 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의도로 제일의료재단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말까지 양측의 협상은 제일의료재단의 이전 부지와 건물은 물론 가격까지 언급할 정도로 진전됐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임직원 고용승계 문제가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동국대학교 측은 제일병원 운영을 위해 기존의 의대 인력과 한방병원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이에 제일의료재단이 반발하며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이후 인천지역 최대 대학병원인 가천대학교 길병원과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봄빛병원 등이 인수의사를 타진했으나 협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린이병원 등 사회공헌에 관심을 가져온 넥슨재단 역시 제일병원의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넥슨재단은 제일의료재단이 지고 있는 1000억원대의 부채원금과 이자 등 악화된 재무상황을 검토한 끝에 인수의사를 접었다.
◇청산 위기서 기사회생…비영리법인 회생 모델 제시
지난해 말까지도 인수자를 찾지 못한 제일의료재단은 결국 지난 1월 서울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려야했다. 외래진료가 중단되고 입원환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전원조치 되는 등, 병원의 경영사정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기 때문이다. 당장 의약품과 기자재를 구입할 운전자금마저 모두 소진된 상황이었다.
지난 2월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배우 이영애 씨나 메디파트너 등 투자자들은 실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제일병원의 경영정상화를 돕겠다는 의지는 충분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매각주관사로 선정된 딜로이트안진-흥국증권은 제일의료재단의 회생방안을 내놨다. 파빌리온자산운용(옛 아시아자산운용)이 부동산을 인수 후 개발하고, 병원은 수도권 지역으로 분원을 지어 이전하는 방안이 골자다.
기부와 출연이 선행되어야 하는 비영리법인의 특성상 원매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고, 주무관청의 승인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같은 방안은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제일의료재단은 일부 부동산 매각대금 550억원과 DIP금융(Debtor In Possession Financing) 350억원 등 변제재원 900억원을 확보했다. 지난 9월 26일자로 인가된 회생계획안에 따라 제일의료재단은 채무를 변제하고 경영 정상화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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