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의장 구속' 삼성, 이사회·거버넌스 실험 '찬물' '미전실 대체' 이사회 키우기 시도, 교체 또는 대행체제 장기화땐 의미 '퇴색'
김장환 기자공개 2019-12-18 11:33:45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7일 17: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법정 구속이 새롭게 구상 중인 거버넌스 전반에도 상당한 충격파를 안길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이사회를 꼽았다.이사회 권한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영진과 이사회 의장의 분리도 실현했다. 이 과정에 이사회 정점에 올라섰던 게 이 의장이다. 이 의장의 구속은 이사회 힘을 보다 더 크게 키우려 했던 삼성전자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1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도 같은 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 의장과 강 부사장은 동시에 법정구속됐다.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에 힘을 싣고자 했던 삼성전자는 이로 인해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 의장 공백은 당분간 대행 체제로 메워야 하는 상태다.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의장을 대체할만한 내부 인사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미전실을 해체한 후 이사회의 권한을 적극 키우는 행보를 보였다. 2018년 의장과 CEO의 분리를 실현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은 과거 미전실을 통해 핵심 업무와 현안을 처리해왔다. 이사회는 사실상 의결만 하는 허울뿐인 기구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미전실을 해체한 만큼 이사회 권한 강화는 필수였다. 아울러 경영과 이사회의 분리는 미전실이 투명하지 못한 의사결정으로 인해 마치 '적폐 세력'처럼 몰렸다는 점을 고려한 일이었다.
삼성전자가 이 과정에 이상훈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내세운 건 그가 과거 미전실 업무 역시 잘 알고 있는 핵심인사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경리팀으로 입사해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임원, 삼성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임원,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1팀 사장 등을 역임했다. 미전실이 2017년 3월 해체되기 전까지는 신규사업 발굴 등을 전담했다. 삼성 내부에선 대표적인 재무·전략통으로 불린다. 미전실 경험 등을 토대로 그룹 내에선 '2인자'로 통한다. 그런 이 의장을 수장 자리에 앉힌 것 자체가 이사회에 힘을 싣는 일이었다.
이 의장과 이사회 역할의 중요성이 최근 들어 보다 더 부각된 이유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며 이사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공석은 채우지 않았다.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6명으로 구성돼 있던 이사회는 이에 따라 사내 4명, 사외 6명 구도로 바뀌었다. 재판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회 참여를 피해왔던 이 부회장이지만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이 부회장이 이사회를 떠난 만큼 의장의 책임과 권한이 더욱 막중해졌다고 볼 수 있는 상태였다. 이 의장이 구속되면서 그 역할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구속된 이 의장을 대체할 인사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게 여겨진다. 당분간 의장 대행을 할 가능성이 높은 김기남 사장을 비롯해 이사회 사내이사는 모두 핵심 사업을 맡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사업부 사장과 이사회 의장을 겸직시키면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CEO와 의장을 분리한 과거 의미가 퇴색된다.
이를 보면 삼성전자에서 과거 한 시대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핵심 인사들 중 한 명을 서둘러 이사회 의장 자리에 앉힐 수도 있어 보인다. 권오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윤부근 부회장 등이다. 다만 삼성 관계자는 섣부른 관측이란 입장이다.
이 의장의 임기가 오는 2021년 3월 22일까지란 점을 고려하면 최대 1년3개월 동안 이사회 의장 대행 체제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 재판 결과까지 나오지 않는 한 이 의장을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임기 말까지는 신임 이사회 의장 선임 없이 대행 체제를 유지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삼성전자의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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