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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행장의 길 [thebell desk]

김용관 기자공개 2020-01-10 07:57:53

이 기사는 2020년 01월 09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요즘 '스토브리그'라는 핫한 드라마가 있다. 4년 연속 꼴찌에 머물던 야구팀에 새롭게 영입된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에 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백 단장은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그려진다. 구단주는 야구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인물을 영입해 구단을 해체하는 악역을 맡기려 한다.

하지만 반전은 그 뒤에 숨어있다. 백 단장은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1등 청부사였다.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의 단장을 맡았고 그의 손을 거친 팀들은 늘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값진 우승을 거머쥐었다. 백 단장은 취임 이후 기존 조직의 비효율과 파벌싸움 등 고질병을 하나씩 고치며 팀을 새롭게 탈바꿈시킨다. 목표는 1등.

IBK기업은행이 낙하산 인사로 시끄럽다. 기업은행은 2010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지난 27일 임기를 마친 김도진 행장까지 약 10년간 3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하는 빛나는 전통을 만들었다. 기업은행에선 이번에도 내부 출신이 행장이 되리란 기대가 컸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두차례 정도 청와대 인물을 내려보내려고 했지만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다. 그토록 낙하산 인사를 문제시 삼던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전통이 깨지는 것에 대해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청와대는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을 신임 행장으로 선임했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정부 일각에선 기업은행이 내부 출신 논리를 앞세워 파벌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논공행상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내부 출신 행장이 이끌었던 10년간 기업은행의 경영성과가 과거 어느때보다 좋았다는 점에서 명분도, 실리도 놓쳤다는 지적이다. 힘들게 성과를 내서 직원들이 그 과실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낙하산 인사는 공정성을 해치기 쉽다. 사회 전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낮추는 잘못된 행위임은 분명하다. 이 점이 낙하산 인사들을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공정'이라는 단어를 재임 기간 내내 화두로 삼고 있는 정부 아닌가. 10년간 내부 승진으로 잘 운영해오던 은행에 왜 청와대 출신 관료를 내려보내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낙하산 인사는 능력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무능한 낙하산 인사가 은행이나 회사를 망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봐왔다. 비전을 이해하고, 능력을 발휘하고, 기존 직원들을 인정할 정도의 인품을 갖고 있으면 낙하산 인사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엔 인맥으로 온 무능한 인사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고 그 성과를 나타내는 인사에겐 농담삼아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침투, 임무를 완수한다는 의미에서 '공수부대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윤종원 신임 행장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8일 단행한 대규모 검찰 인사를 보면 기업은행 노조가 아무리 반대해도 큰 하자가 없다면 행장 취임을 철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부 인사가 행장으로 승진하는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선호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게다가 기업은행은 정부 소유의 은행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금융을 제공하는 기업은행의 특성상 정부의 입김을 배제할 수 없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벤처기업, 중소기업이 금융시장에서 레벨 플레잉(대등하게 자본조달에 접근하는 것) 하도록 돕는 것이 기업은행의 역할이다. 정책금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넓은 정치적 네트워크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낙하산 인사가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전제는 금융 산업이나 기업 경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나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 입맛에는 맞지만 회사에는 독이 되는 비합리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과연 윤 행장이 그런 전문성을 갖췄을까. 정부 명령에 순응하기보다 은행 입장에서, 산업 입장에서 정부와 협의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윤 행장은 워크홀릭으로 유명하다. 그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워낙 꼼꼼하고 똑똑해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게 대체적인 세평이다. 윤 행장이 그저 그런 낙하산으로 남을지, 아니면 기업은행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탁월한 공수부대원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윤종원 행장이 기업은행의 마지막 낙하산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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