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6월 10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포스코의 선견지명은 옳았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과 11월, 올 1월 세 차례에 걸친 한국물(Korean Paper) 발행으로 약 25억달러(3조 25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했다.당시 포스코의 선제 조달은 눈길을 끌었다. 2021년 차환 자금 마련까지 나선 포스코의 유동성 확보 전략은 시장 분위기와 대조적이었다.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채권 발행환경은 나날이 개선되고 있었다. 시장 호조로 발행 시기가 늦을수록 조달비용은 낮아졌다.
포스코의 선제 조달이 빛을 발한 건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다. 글로벌 시장 내 투심 위축으로 공기업조차 한국물 발행을 접는 사례가 속출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가 마지막으로 한국물을 찍었던 올 1월이 조달 최적기였다.
포스코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상하고 조달에 나섰던 건 아닐 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에 대응해 최적의 조달 전략을 택했을 뿐이다. 미래를 읽는 냉철한 시각과 과감한 행동 등이 차별화된 조달 전략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국내 기업이 또 있을까. 업계에서는 한국물 시장에서만큼은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물 시장에서는 포스코와 다른 이슈어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획재정부의 윈도우(window)다.
한국물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소위 '윈도우'라고 불리는 프라이싱(pricing) 날짜를 지정받아야 한다. 이슈어는 기획재정부에서 윈도우를 받는 방식으로 사실상 발행을 승인받는다.
포스코가 반년 간 세 차례나 윈도우를 받은 건 이례적이었다. 민간기업의 경우 윈도우 받기가 더욱 까다로워 연간 한두 건의 외화채를 찍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 관련 업계에서는 조달 자금의 사용처 등을 입증하는 절차는 물론 딜의 성공 가능성 등을 인정받아야 겨우 한 번의 윈도우를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포스코에 대한 기재부의 믿음이 없었다면 완성할 수 없는 조달 전략이었던 셈이다.
윈도우 제도가 드러내는 한계는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당장 외화채 발행이 절실한 기업조차 기획재정부의 윈도우에 가로막혀 조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해 개별 기업만의 조달 전략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배경이다.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한 조달 대응력 역시 떨어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등 글로벌 시장 변동성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물 발행 최적기를 포착하는 게 딜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요소로 부상한 이유다.
반면 국내 이슈어는 윈도우 등에 가로막혀 운신의 폭이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국물 접근법이 바뀌지 않는 한 국내 기업들의 '무색무취' 조달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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