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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광글라스그룹 지배구조 개편]백년기업 초석 '밀라노 프로젝트'는 성공할까'변혁' 강조한 솔개 우화에서 착안…2년 전부터 지배구조 개선 TF 가동

박상희 기자공개 2020-08-18 10:02:39

이 기사는 2020년 08월 14일 16: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솔개는 50년을 산 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스스로 발톱을 뽑고 부리를 깨고 깃털을 뽑는다. 갱생의 과정을 거치면 100년을 더 살 수 있다. 이 고통스러운 갱생의 과정을 포기하면 솔개는 굶어 죽는다.

널리 알려진 솔개 우화다.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라는 중세기독교 동물상징사전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실제로 솔개가 이런 갱생을 거치지는 않지만 '변혁'을 강조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삼광글라스그룹은 약 2년 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프로젝트 명은 '밀라노(milano)', 스페인어로 솔개를 뜻한다. 삼광글라스그룹이 이른바 '백년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솔개처럼 갱생의 각오로 지배구조 개선에 임해야 한다는 각오를 담았다.

◇3사 분할합병안, 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로 5개월 간 표류

실제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 여정은 험난했다. 삼광글라스와 이테크건설, 그리고 군장에너지 3사 분할합병을 통한 지주사 출범 계획이 세상에 알려진 건 5개월 전인 3월18일이다. 공시와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가 공식적으로 밝혔다. 시장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였다.

이테크건설 관계자는 "분할 합병 계획을 공시하기 바로 전날까지 삼광글라스와 이테크건설 주가는 하향세를 보이다가 발표 직후 반등했다"면서 "외부평가기관인 삼일회계법인 측 사람들과 식사 이동할 때도 따로 움직일 정도로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2년여 걸쳐 각고의 준비 과정을 거친 만큼 별다른 이슈는 없을 것으로 봤다. 앞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이 문제가 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주권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을 산정할 때 '교과서'로 여겨지는 '기준시가'를 적용했다.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한 합병비율 산정이 '정석'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오너 3세인 이우성 이테크건설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광글라스 주주에 불리하게 합병비율이 산정됐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디앤에이치투자자문을 비롯한 합병에 반대한 삼광글라스 일부 주주들은 기준시가에 기초한 합병가액의 형평성을 문제삼았다. 분할되는 이테크건설에는 군장에너지 보유 지분(48%)의 가치가 반영된 반면 삼광글라스 가치를 평가할 때는 군장에너지 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이우성 이테크건설 부사장과 이원준 삼광글라스 전무(왼쪽부터)

3사 분할합병 결과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의 장남 이우성 이테크건설 부사장과 차남 이원준 삼광글라스 전무가 지주사 최대주주로 올라선다는 점이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결론적으로 지주사 전환을 통해 3세 승계를 사실상 이뤄내는 셈인데, 이를 위해 기준시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합병에 반대하는 세력과 찬성하는 세력 간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와중에 삼광글라스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합병 증권신고서는 두 차례나 정정 명령을 받았다. 결국 삼광글라스는 6월 15일 "주주 간 합의 없는 합병은 추진하기 어렵다"며 "당분간 합병계획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광글라스 주채권은행에서 '3사 합병분할안' 반겨

밀라노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TF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당초 이 프로젝트는 백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현 지배구조 하에서 말단에 위치한 군장에너지는 영업이익률이 20%가 넘는 더없이 우량한 알짜배기 회사였고, 상단에 위치한 삼광글라스는 수년간 계속된 적자로 인해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군장에너지를 지배구조 상단으로 올려 건전하고 우량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했다.

밀라노 프로젝트 핵심 관계자는 "군장에너지를 지배구조 상단으로 올려 지배구조를 튼튼히 하는 것이 삼광글라스를 살리는 길이라 판단했다"면서 "방법론 연구 차원에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쳐 지금과 같은 3사 분할합병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테크건설 입장에선 그리 유쾌한 결정은 아니었다. 3사 분할합병 과정을 거치면 우량한 자회사로 두고 있던 군장에너지가 이테크건설을 지배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군장에너지의 최대주주는 현재 이테크건설(47.7%), 2대주주는 이테크건설의 최대주주인 삼광글라스(25%)다.


밀라노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꼽은 것은 3사 분할합병이 삼광글라스를 위한 일인데 정작 삼광글라스 일부 주주가 결사 반대를 외친 것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삼광글라스가 올해 상환해야 할 차입금만 2000억원에 달했는데, 보유 현금성자산은 64억원에 불과했다.

삼광글라스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더 이상 롤오버(만기 연장)가 어렵다고 상환 압박도 심했다"면서 "CFO가 3사 분할 합병 계획을 알려주자 삼광글라스 재무구조가 개선된다고 가장 반긴 곳이 산업은행이었다"고 전했다.

장고 끝에 TF는 밀라노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논란 핵심이었던 삼광글라스 합병가액 산정 기준을 기준시가에서 자산가치로 변경하기로 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기준시가를 고집할수록 이해관계자와 시장의 오해만 깊어질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천신만고 끝에 삼광글라스는 3번째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금감원 승인과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밀라노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 백년기업으로 갈 초석이 될 밀라노 프로젝트는 아름답게 끝맺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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