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6월 09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재계의 사면 건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르면 8·15 광복절에 맞춰 이뤄질 것이란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그룹 총수의 사면 건의에 대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점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정치권에선 가석방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오는 8월이면 형기의 60%를 채워 가석방 요건을 갖춘다. 지금 분위기라면 가석방이든, 특별사면이든 8월에는 자유의 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돈과 '빽'(뒷배경), 힘 있는 사람들은 만날 사면 대상 1선에 오른다"며 "그게 법치주의냐"고 직격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산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등 현안을 챙길 총수의 부재는 우리 경제에도 큰 손실이라는 것이 사면론의 주요 줄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투자의 '골든 타임'을 실기하지 않기 위해선 총수의 복귀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다. '오너 회장'을 축으로 움직이는 한국의 대기업 경영시스템이 실제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 회장 개인으로도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수감 생활일 것이다. 1.9평 독방에서 수인번호가 새겨진 수의를 입고 있는 대기업 총수는 상상하기 힘들다. 언론 보도를 보면 끼니 당 1440원짜리 수감자용 식사를 남기지 않고 먹고 있다. 식사가 끝나면 직접 설거지를 한 뒤 식기를 반납해야 하며 청소·이불 정리도 혼자 한다. 아침저녁으로 신문들을 꼼꼼히 읽고 그 외 시간에는 종교서적을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혜 시비를 야기한 다른 재벌 총수들과 달리 모범수로 통한다고 전했다. 상당수 재벌 총수들은 매일 변호사와의 접견을 신청해 특별면회실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가 하면 아예 병원에 입원해 시간을 떼우는 경우도 잦았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재벌 회장으로서의 삶이 불쌍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이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지만 왕좌는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자기 의지대로 살았던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삶 자체가 이미 '창살없는 감옥'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친구들과의 치맥 한잔, 영화 한편, 야구 관람에 며칠을 끌어안고 다닐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하지만 대기업 회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갇혀있는 감옥의 창살은 더 두터워지고, 더 질겨진다. 돈 몇 푼 더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부럽지는 않다.
만약 자유의 몸이 된다면 그게 끝은 아니다. 창살없는 감옥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목할 것이다. 성공한 경영인이라는 이미지보다 재판받는 모습이 더 익숙할 수 있다. 억울하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나마 다른 재벌 오너와 달리 절제와 겸손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은 다행이다. 절제와 겸손은 재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1980년대 KBS '유머 일번지'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비룡그룹이라는 가상의 대기업을 등장시킨 이 코너는 회장 김형곤을 중심으로 정재계 기득권의 허물을 빗대어 꼬집고 풍자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재계는 크게 변한거 같지 않다.
이제 할아버지, 아버지와 다른 그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투명한 지배구조, 독립적인 경영 시스템,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구성원의 행복, 사회적 가치 확대 등 자유로운 상황에서 수행해야할 책무는 여전히 많다. 막 회장 자리에 오른 다른 재벌 오너들도 마찬가지. 이제는 고인이 된 김형곤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주먹으로 이마를 치면서) 잘 돼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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