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분석]'외부충격' 비자발적 한진칼 지배구조 개선①KCGI 경영권 분쟁 계기, 배당 확대·이사회 독립성 강화·감사제도 재정비 진일보
유수진 기자공개 2021-06-17 10:31:46
[편집자주]
1999년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이 허용된 후 지주회사 체제는 재계의 '표준'이 됐다. 제도 시행 후 20여 년이 흐르며 각 그룹의 지주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룹의 얼굴인 지주사의 현주소를 더벨이 취재했다. 각 그룹에서 지주사가 차지하는 의미와 지주사의 현금 창출구를 비롯해, 경영 전략, 맨파워, 주요 이슈를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6월 14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최근 몇년 간 재계와 투자은행(IB)업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회사 중 하나다. 지주사 특성상 사업적 리스크가 크지 않고 재계 순위나 자산 규모 등이 SK㈜나 ㈜LG 등과 비견되지 않지만 이례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름 아닌 '경영권 분쟁' 때문이다.수년 간의 경영권 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진칼의 지배구조가 크게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경영권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선진화와 주주친화정책 확대 등을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2013년 지주사 체제 전환 당시 순환출자고리를 끊어내는 등 외형을 다듬었다면 2019~2020년엔 디테일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손보며 내실을 다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진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건 2013년이다.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정부 차원의 압박이 더해져 기존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력 유지가 어려워지자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핵심은 대한항공을 인적분할해 지주사 한진칼을 출범시킨 것이다. 한진칼은 자회사 관리와 그룹 전반의 투자 등을 맡고 대한항공이 항공운송사업을 그대로 담당하기로 했다.
이후 ㈜한진이 보유 중이던 한진칼과 대한항공 지분을 각각 정리하고 한진칼과 정석기업 투자부문간 합병 등이 진행되며 지주사 체제가 갖춰졌다. 오너일가가 한진칼을 통해 나머지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형태로 지배구조가 정리된 것이다.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은 오너일가의 한진칼 지분율을 높여 지배력이 이전보다 강화되는 효과도 냈다.
끝난 줄 알았던 지배구조 관련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 2019년 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2018년 말 깜짝 등장한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빠르게 한진칼 지분을 매집하기 시작하면서다. 이때 본격화된 경영권 다툼은 2020년 11월 일단락 되기까지 2년간 지속됐다.
KCGI의 행동은 단순히 지분 확대에 그치지 않았다. 이사·감사 후보를 제안하고 전자투표 도입·배당 확대 등을 촉구하는 등 공개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기업가치 개선을 위해 한진칼 지분을 사들인다는 명분에 부합했다. 실제 속내와는 별개로 주주권익 강화와 이사회 투명성·독립성 확대 등 지배구조 선진화와 방향이 일치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한진그룹이 심각성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델타항공 등에 SOS를 요청해 겨우 경영권을 지켜나갔다.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손 잡고 조원태 회장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고 조양호 회장이 회사를 이끌던 당시 시작된 경영권 다툼이 아들 조 회장 시대에도 계속된 것이다.
팽팽하던 양측의 신경전에 균열이 생긴건 작년 11월이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고자 한진칼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면서다. 산은은 국내 항공산업 구조 개편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조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했다.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0.66%의 지분을 쥔 주요주주가 됐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한진칼은 변하기 시작했다. KCGI의 요구 중 합리적인 내용은 수용하고 산업은행과 약속한 내용도 적극 이행한 것이다. KCGI가 앞에서 끌고 산업은행이 뒤에서 밀어 지금의 지배구조를 완성시켰다는 의미다. 앞서 산은은 한진칼 지원 조건으로 조 회장에게 산은 추천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등 '7대 의무'를 부과했고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등도 요구했다.
한진칼은 2019년 배당성향을 5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등 주주친화책을 강화하고 이사회의 독립성·투명성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수도 대폭 늘렸다. 사외이사 비중 확대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2019년 말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등 '6인 체제'였던 이사회가 2020년 말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8명 등 '11인 체제'로 커졌다. 여기에 올 3월 산은이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이 추가로 합류하며 14명으로 구성된 대형 이사회가 완성됐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도 분리했다. 지난해엔 김석동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데 그쳤지만 올해는 정관에 대표이사의 이사회 의장 겸직 금지를 아예 못박았다. 지속가능경영과 투명경영 실천을 위해 보상위원회를 설치한 데 이어 최근 거버넌스위원회를 ESG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은 올해로 3년 연속 공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상 핵심지표 준수 현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엔 총 15개 항목 중 '이행(O)'이 6개에 불과했지만 2020년엔 9개로 늘었다. 보고서 작성 첫해 거래소의 가이드라인을 다소 느슨하게 해석해 'O'으로 표기했다 이듬해 '미이행(X)'으로 바꾼 항목이 2개라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4개에서 9개로 진일보한 셈이다.
감사기구 관련 항목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엔 없었던 내부 감사기구에 대한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는 내외부 감사인간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감사위원 전원은 지난 2월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 및 공시 관련 최근 동향에 대해 교육받았으며 지난달 13일엔 금융감독원의 회계심사, 감리업무 운영계획에 대한 안내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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