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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워치/SK이노베이션]'위기를 기회로', 파이낸셜 스토리는 이미 시작됐다①대규모 자금 조달+탄소제로 사업구조 재편 '두 마리 토끼'

박상희 기자공개 2021-08-13 10:18:53

이 기사는 2021년 08월 09일 16:38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재무전문가를 선호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룹의 2인자로 불리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 회장이 2007년 직접 삼성그룹에서 영입한 재무통이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 SK㈜를 이끄는 장동현 사장은 그룹 내 재무통이자 전략기획통으로 불린다. 그밖에 주요 계열사 CEO와 CFO 요직에도 재무 베테랑들이 포진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재계에서 선제적으로 ESG 경영을 도입하면서 주요 경영진에 '파이낸셜 스토리'를 구축해 달라고 요청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의 재무성과 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통해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계열사 CFO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무 전략을 고민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SK그룹 계열사 가운데 파이낸셜 스토리가 가장 시급한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ESG 경영 대두 속에 주력 사업이던 정유와 화학은 탄소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신성장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LG와의 특허 소송으로 인해 조 단위 합의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 구조 재편과 자금 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될성부른 떡잎, 100% 물적분할 방정식 고수

SK이노베이션이 지난달 초 배터리 사업부문 분할을 공식화 한 지 약 한 달 만에 이사회를 열고 액션플랜에 들어갔다. 물적분할을 통해 배터리 사업부문을 SK배터리(가칭)로 분사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1일 'SK이노베이션 스토리 데이(Story Day)' 행사를 열고 중장기 핵심 사업 비전 및 친환경 전략을 발표했다. 행사명이 ‘스토리 데이’인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최 회장이 주문한 ‘파이낸셜 스토리’를 어떻게 써나갈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자리로 해석됐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분사는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기는 했으나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앞서 경쟁사인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을 통해 독립시키는 수순을 밟았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ES)는 기업공개(IPO) 과정을 밟고 있다.

그렇다고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전철을 그대로 따른다고 평가절하할 것도 아니다. 될성부른 떡잎을 100% 자회사로 독립시켜 IPO나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서는 것은 SK이노베이션이 오래 전부터 지향해 온 재무 전략 중의 하나다.
이노베이션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국내 최초의 정유회사인 '대한석유공사'로 출범했다. 1980년 SK그룹(당시 선경그룹)에 인수됐다. 1982년 사명을 '유공'으로 변경하면서 민간기업으로 거듭났다. 1997년 SK주식회사로 CI 체계를 변경했다.

SK이노베이션이 ‘물적분할’ 매직에 눈을 뜬 것은 2007년이다. SK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SK주식회사 내의 에너지·화학 분야를 분리해 SK에너지로 재탄생했다. 고유사업영역인 에너지·화학사업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게 됐다. 2010년 이사회 결의를 거쳐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을 모회사로 SK에너지, SK종합화학(SK Global Chemical), SK루브리컨츠를 자회사로 하는 4개의 회사로 물적분할했다.

이후 2013년 7월, 5개 자회사(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로 재편했다. 2019년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추가하여 6번째 자회사를 두게 됐다. 전기차 배터리와 자원개발(E&P) 사업도 분사하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는 모두 8개로 늘어난다.

◇배터리 특허 소송 이후 자금 조달 집중...탄소사업 지분 매각 눈길

SK이노베이션이 아무 목적이나 이유 없이 여러 개의 자회사 체제를 구축 했을리 없다. 최후의 목적지는 언제나 자금 조달이었다. 항상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SK루브리컨트 상장 중단이 대표적이다.

2013년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 IPO를 추진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일정을 연기했다. 2017년에도 또 한번 IPO에 도전했지만 2018년 4월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투자가의 투자 심리가 기대치를 밑돌자 결국 상장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IPO나 지분 매각은 얼마든지 뒤로 미룰 수 있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기본 입장이었지만 LG와의 배터리 소송전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소송 합의금 마련과 배터리 사업의 투자금 마련을 병행하기 위해선 자금을 그러 모으는게 1순위다.

SK이노베이션은 올 4월 윤활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 40%를 1조1200억원에 매각했다. 그밖에 자회사 SK에너지가 보유한 주유소 115곳을 팔아 7600억원을 현금화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자회사 SK종합화학 지분 49% 매각을 추진 중이다. 자회사로 분사할 자원개발 사업부 역시 매각 작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언급한 거래의 목적은 하나로 귀결된다. 자금 조달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지분 매각에 나선 사업부문은 모두 ‘탄소 비즈니스’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이 자금 조달과 함께 탄소 사업 비중을 축소하려는 시그널을 시장에 확실하게 내보인 셈이다.

자회사 가운데 IPO에 성공한 곳도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이다. 분사하는 가칭 SK배터리도 내년에 본격적으로 상장에 시동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전략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넘어서 ‘탄소 제로‘라는 목적을 위해 사업 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면서 ”최태원 회장이 주문한 파이낸셜 스토리의 성공 여부는 SK이노베이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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