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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판결문 뜯어보기]'법령 근거주의' 선례 남기다②황영기 이어 손태승 무리한 징계 사례, 재판부 '명확성 원칙' 어긋 판단

이장준 기자공개 2021-09-06 07:15:48

[편집자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DLF 1심 승소 파장이 상당하다. 비슷한 당국 징계를 기다리고 있던 금융사와 CEO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당사자들이 마냥 손뼉칠 상황은 아닌 듯하다. 74페이지에 이르는 손 회장 관련 판결문에는 금융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다수 담겨 있었다. 더벨은 판결문을 입수해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02일 07: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해외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판결은 확실한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자의적 해석은 곤란하다는 교훈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금융당국은 과거에도 몇 차례 관련 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징계를 내렸다가 위법 판단을 받았다.

특히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사 전·현직 CEO들을 전방위적으로 겨냥한 만큼 이번 판결이 주는 파장도 상당하다. 금융당국도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추후 행보에 신중한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금융권에서 법령 위주로 징계를 내리는 문화가 정립될지 주목된다.

◇황영기·박동창 등 당국 상대 승소 사례 '제재 근거 없다'

금융권에서는 10년 전에도 이번 판결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은 과거 재직 시절인 2005~2007년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 투자를 지시했다가 1조원대 손실을 냈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조치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이 3개월 직무정지 징계안을 의결,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황 전 행장은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나 제재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은 모두 황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다. 은행법 개정 시점이 판결을 가른 중요한 변수였다.

그가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한 기간은 2004년부터 2007년 3월까지다. 금융위 의결이 이뤄진 시점은 2009년 9월이다. 당국은 이미 퇴임한 그에게 관련 조치를 통보했다. 하지만 은행법 '제54조의2 퇴임한 임원 등에 대한 조치내용의 통보'는 2008년 3월에 새로 만들어졌다.

당시 재판부는 금융당국이 행정법규를 소급해서 적용했다며 제재 처분을 인정하지 않고 무효화했다. 황 전 행장은 3년에 걸친 소송전 끝에 명예를 회복했으나 당국의 법령에 어긋난 해석과 징계 탓에 KB지주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박동창 전 KB지주 전략담당 부사장이 당국과 벌인 소송 사례도 짚어볼 만하다. 그는 2012년 12월 KB금융이 옛 ING생명(신한라이프)을 인수하려다 당시 이사회 반대로 좌절되자 이사회 안건 등 대외비 정보를 미국 주총 의안분석업체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직원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내부자료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명목으로 이듬해 금감원으로부터 감봉 3개월 조치를 받았다. 당시 상사였던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도 관리 태만을 이유로 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았다. 박 전 부사장은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금융당국의 제재가 사회 통념상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정이 없어 보인다고 했지만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당시 재판부는 ING생명 인수계약 및 자회사 편입 승인안을 상법상 절차에 따라 열람할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제재의 근거인 금융지주회사법 '제48조의3 수뢰 등의 금지 등'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도 2심 판결을 수용해 일부 감형한 수준의 벌금형을 확정 지었다. 박 전 부사장과 어 전 회장에 대한 징계 조치도 해제됐다.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충족" 금융당국, 유사한 과오 답습

이번 DLF 행정소송 1심 판결을 보면 금융당국이 앞서 사례들과 유사한 과오를 답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2017년부터 우리은행이 판매해온 사모펀드인 독일국채금리연계 DLF의 손실률이 올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상품 선정 및 판매 적정성을 두고 부문검사를 실시했다. 이듬해 투자중개업 영위 과정에서 △DLF 불완전판매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사모펀드 투자광고 규정 위반 등 위법·부당행위가 있었다며 검사결과를 통보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3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당시 은행장)에게 감독자로서 금융 관련 법규를 위반하고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우리은행 다른 임원 10여 명에게도 감봉·정직 등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손 회장과 당시 WM그룹장은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출처=DLF 판결문 일부 발췌

서울행정법원 제11부(강우찬, 위수현, 김송)는 지난달 말 이들 원고에 대한 처분을 취소하고 모든 소송비용을 피고가 부담하도록 했다. 처분 조치 중에서는 특히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가 아니라 '내부통제 기준 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금융회사나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명시했다.

관련 법리를 설명할 땐 '명확성의 원칙'을 들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령의 경우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체계적, 목적론적 해석은 허용하지만 단순히 행정실무나 입법정책상 필요에 따라 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금융사가 법정사항을 포함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했다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자체는 이행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 내부통제기준 등'에서 열거한 사항을 모두 포함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특히 금감원이 DLF 불완전판매로 인한 대량 피해가 발생하자 내부통제 기준 자체의 흠결이 아닌 '내용상의 미흡' 또는 '운영상 문제점'을 처분사유로 잘못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근거법령이 허용하는 제재 사유의 범위를 벗어나게 처분사유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금융권에서는 추후 자의적 해석을 최소화하고 법령에 근거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사고가 나더라도 현행법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징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령에서는 포괄적으로 설명한 부분에 대해 당국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 금융사가 반박하면서 행정소송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추후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관리감독 규정 등을 다듬겠지만 법원에서는 당장 제재와 관련해 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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