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0월 06일 07시4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격(人格)의 디폴트값은 개인마다 어디쯤 고정돼 있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플러스냐 마이너스냐를 따질 것은 아니고 범위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러니까 선과 악 중 어느쪽인지 보다는 그 정도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이른바 ‘Nature versus Nurture(선천성 vs 후천성)’의 수백년 묵은 논쟁을 떠나 사람은 통상적으로 그냥저냥이다. 대단히 이타적이지도 않지만 악의 역시 얄팍하다. 이 노멀함의 범주를 벗어나면 놀랄만한 사례로 회자된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탄식이 나온다.
사무엘 마샬의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육군 병장(Sergeant) 출신의 군사전문 저널리스트다. 그는 ‘Men Against Fire(인간과 발포명령)’라는 저서를 통해 “2차 세계대전에서 오직 4명 중 1명의 병사만이 실제 사람을 상대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적었다.
마샬의 조사를 두고는 꾸준히 신빙성 논란이 있지만 전투에서 상당수의 군인이 총격을 망설인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에서도 여러 차례 관찰됐던 결과다. 아주 모진 악의를 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LH 사태를 일으킨 주범들은 보통의 사람일까. LH 전·현직 직원을 포함해 조직적 땅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인원만 1700명을 넘는다.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비리이니 엄청난 악행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상범위를 넘어선 오류값이 한 사건에서 이리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언뜻 납득하기 힘들다. 디폴트 세팅의 에러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에러로 여겨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오랜 기간 쌓인 불법적 관행 아래서 학습된 악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제도개선부터 우선돼야 하는데 국토부가 내놓은 혁신안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LH 토지와 주택·주거복지 부문 분리, 주거복지와 토지·주택 부문 분리, 주거복지 아래 토지·주택 부문을 자회사로 두는 분리안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공청회에도 아직 최종안을 결론짓지 못한 상태다.
핵심인 내부감시와 통제 측면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수직분할만으로는 불법을 뿌리뽑을 만한 통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부동산거래 사전 허가제, 내부고발 활성화, 외부감시 등을 통해 투기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쉬운 부분은 LH 사태가 이미 한물간 이슈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익명 커뮤니티에 “꼬우면 (LH로) 이직하든가”라고 쓴 직원을 잡아내라며 불타올랐던 관심은 이제 차갑게 식었다. 혁신안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징벌보다 중요한 것이 체제 변화다. 잘못된 산식이 돌아가고 있으니 자꾸 틀린 값이 도출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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