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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수요예측 '허수 주문' 논란, LGES가 다시 불지폈다 [1경5000조의 비밀]①호황기마다 기관 풀베팅 '관행'…뻥튀기 된 기관 경쟁률, 우량 딜 선별 기능 저하

최석철 기자공개 2022-02-16 13:16:15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 IPO 이후 기관의 허수 주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모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운용 자산을 훌쩍 넘는 주문을 넣는 기관의 행태가 정당한 수요예측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관의 욕심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동안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를 독려해온 제도적 허점 역시 주된 배경이다. 이에 국내 IPO시장의 수요예측 제도 현황과 배경, 그에 따른 허와 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2월 14일 10: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IPO시장에 갖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1경5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몰렸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허수 주문’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비판을 비껴가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컴플라이언스를 적용하는 해외 기관투자자와 달리 국내 기관투자자의 경우 IPO시장 호황기에 최고한도로 풀베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 탓에 풀베팅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그동안 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할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이지만 IPO시장의 위축을 우려해 모두가 '쉬쉬'해 왔다.

때문에 수요예측의 가격 결정 기능이 훼손되면서 정당한 주문을 넣는 기관투자자는 물론 일반 투자자에게 왜곡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IPO시장이 바로서기 위해서라도 수요예측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공모주 물량 확보 위한 이상현상...해외 대비 국내기관 실수요 비중↓

국내 IPO 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예측에서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적어내는 건 이미 관행이다. 운용자산은 물론 레버리지를 통해 최대 확보할 수 있는 금액조차 훌쩍 뛰어넘는 주문을 넣는 방식이다.

적어내는 금액이 참여자의 인수 의지로 직결돼되는 만큼 주관사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이번 LG에너지솔루션 IPO처럼 경쟁률이 수천대 1을 넘어가는 상황이라면 2000주를 적어내도 실제 받을 수 있는 기대 수량은 1주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으로 10조를 적어내도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매입자금은 50억원 셈이다.

이에 실제 받고자하는 물량과 경쟁률을 따져 주문금액을 역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실수요로 베팅했다가 경쟁률이 높게 나오면 물량을 조금밖에 배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이상현상이다.

국내에 IPO 수요예측 참여시 기관투자자의 주문금액에 대한 별다른 제약이 없기에 가능하다.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모주 배정금액만 투자신탁 자산총액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수 주문을 넣더라도 실제로 그 주문만큼 배정을 받지 않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 청약 투자자와 달리 기관투자자의 경우 증거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허수 주문이 관행으로 자리잡게 된 주된 배경이다. 일반 청약 투자자의 경우 청약금액의 50%를 주관사에 예치시켜야한다.

해외 기관투자자 역시 경쟁률 상황에 맞춰 실제로 받게 될 물량을 계산해 베팅하는 사례가 있다. 다만 내부 컴플라이언스에 따라 운용자산 대비 일정 비중까지만 주문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만약 주문한 금액만큼 실제 배정이 되더라도 해당 물량을 소화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실질적인 허수 주문은 아닌 셈이다.

다만 국내 기관투자자의 경우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면 이와 관련된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거의 없다. 국내 증권 관련 규제상 해당 내용을 강제하고 있지 않다.

상식적인 ‘룰’을 지키는 대형 기관투자자도 있었지만 물량 경쟁 속에 외면한 채 대규모 주문을 넣은 곳이 다수다. 특히 신설 회사인 경우 기존에 투자 레코드가 없는 만큼 더욱 과감한 허수 주문으로 임팩트를 남기려는 경향성도 크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탓에 실수요 기반인 해외기관 경쟁률보다 오버베팅을 하는 국내 기관 경쟁률이 통상 크게 높게 나온다. 주관사 역시 이러한 ‘허수 주문’ 행태를 익히 잘 알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네트워크가 없거나 신설회사에 대해서는 공모주 배분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자칫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그 불이익을 온전히 떠안아야하기 때문이다.

공모주 배분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이뤄진다. 정량 평가의 경우 통상 우리사주조합 20%, 일반청약 25~30%, 공모주 하이일드펀드 5%, 기관투자자 50~55%으로 정해진다.

정성 평가의 경우 주로 기관투자자에게 공모주를 배정할 때 신청가격, 신청시점, 신청인의 질적 요소(공모실적, 운용규모, 투자성향) 등을 고려한다. 신생 회사일수록 질적 요소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만큼 가격과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셈이다.

IB 관계자는 “무리한 금액을 써냈던 곳은 사실상 향후에도 공모주 배정 과정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 무작정 써내는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면서도 “시장 분위기가 좋을수록, 해당 딜의 흥행 가능성이 높을수록 허수 주문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결정 기능 훼손...일반투자자에 왜곡된 '시그널' 우려

문제는 이러한 허수 주문 때문에 IPO기업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잘못 책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주관사는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의 퀄리티를 따져 해당 IPO 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외부에 알려지는 수요예측 경쟁률 자체도 의미가 적진 않지만 아무래도 ‘허수 주문’을 제외한 실질이 해당 IPO기업의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국내 IPO시장에서는 기관 수요예측 이후 일반 청약이 진행되는 만큼 일반투자자에게는 잘못된 시그널이 전달될 수 있다. 일반투자자의 경우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높을수록 ‘좋은 IPO 기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성이 짙다. 허수 주문으로 경쟁률이 뻥튀기됐을 경우 오판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반대로 허수 주문 때문에 실질적인 성적표보다 흥행 실패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진행된 IPO 딜 중 크래프톤의 경우 수요예측 마감 직전 미달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허수 주문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미달일 경우 주문금액이 그대로 배정될 수 있는 만큼 허수 주문을 낼 엄두를 내지 못한 셈이다.

당시 크래프톤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우량 앵커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숫자로 나타난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면서 일반 청약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적정 가격을 예측하기 위한 수요예측이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무대로 변질되어버린 셈이다. 밸류에이션에 기반한 공모가격 예상보다는 물량만 얻어가려는 기관 때문에 오히려 공모가격의 왜곡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은 IPO 공모주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한 가장 핵심 의사결정 과정”이라며 “수요예측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될수록 시장 전체 볼륨이 커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IPO 이후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 등 역시 관련 제도를 손질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이 잡히진 않았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 자격을 일부 제한하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 설립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나고 운용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에만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런 방식이 합리적 제도 변경인지를 놓고선 현장의 의견은 엇갈린다. 수천개에 이르는 기관투자자의 자산 현황과 레버리지 역량을 매 IPO딜 때마다 일일이 체크하기는 불가능한 만큼 일률적인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 반면 이런 제도 변경이 허수 주문 자체를 막는 방안이 아닌 만큼 오히려 신생회사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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