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8월 04일 09: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항해와 표류의 차이는 목적지가 있느냐다. 풍파에 휩쓸리더라도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이나마 나아간다면 그것은 항해하는 배다. 반대로 거센 물살을 헤쳐 나간다고 한들 목적지가 없다면 결국 표류하는 배다. 항해하는 배는 바람과 파도를 만나면 앞으로 나가지만, 표류하는 배는 무력하게 침몰한다.신라그룹 계열사인 신라섬유는 현재 본업이 부재한 상태다. 1976년 창사 이래 줄곧 영위한 섬유사업을 2015년부터 점진적으로 정리했다. 2020년까지 3억원대 수준의 작은 매출이라도 냈지만, 지난해 들어서는 매출이 아예 발생하지 않고 있다. 섬유시장 경쟁심화에 따른 판매 부진으로 악성재고가 늘어나고, 현금흐름마저 나빠지자 끝내 결단을 내렸다.
본업이 사라지자 부업이 생업이 됐다. 그간 섬유사업의 부진한 수익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부수적으로 영위했던 부동산임대사업이 안방을 차지했다. 본사 부지에 중고차 매매단지를 세운 뒤 자동차상사에 사무실을 임대해 돈을 벌고 있다. 2015년부터는 섬유사업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진입장벽이 낮은 휴대폰판매사업도 추진했다.
두 사업의 실적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최근 5년간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섬유사업부의 적자를 상쇄할 정도다. 덕분에 신라섬유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5년간 꾸준히 두 자릿수대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영업활동현금흐름도 플러스(+)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언뜻 보기엔 본업을 정리한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행보를 선보인 셈이다.
문제는 신라섬유가 향하려는 목적지가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회사는 신규 사업 아이템을 계속해서 물색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상 사업목적에 음식점업이 추가되긴 했지만, 새로운 본업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최고경영자(CEO)인 박재흥 대표 역시 중장기적 비전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만큼 신라섬유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항해보다는 표류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신라섬유 매출은 최근 5년 동안 줄곧 40억원대에서 머무르고 있다. 직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7명(기간제 근로자 1명 포함)에 불과하다. 그간 신라섬유를 인수합병(M&A) 매물로 판단하고 인수를 제안한 업체도 여럿 있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박 대표로서도 답답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신라섬유의 차입금의존도(총차입금/자산총계)는 47.5%에 달했다. 단기차입금은 140억원이지만, 현금성자산은 12억원에 불과했다. 성장동력이 부족한 탓에 외부자금을 끌어오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당연히 신사업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을 수 있다.
다만 박 대표가 섬유사업 정리를 결정한 것도 어느덧 7년 전 일이다. 아직도 새로운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역량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반대로 목적지를 정했음에도 밝히지 않고 있다면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장사로서 항해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 신라섬유라는 배에 올라탄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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