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이낸스 4.0 리오프닝]"IB·현지영업 이어 증권 발행까지…'차별화' 최대 고민"⑥조재찬 유럽우리은행 법인장 "현지 강소기업 공략 슐차인론 최대 취급 성과"
프랑크푸르트(독일)=한희연 기자공개 2022-10-04 07:30:58
[편집자주]
금융사의 해외사업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본점지원 성격의 1.0, 현지화에 집중했던 2.0을 넘어 투자금융(IB)에 주력하는 3.0 시기를 지냈다. 코로나19를 지내며 변화된 금융 환경 속에선 '리오프닝'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들이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전략과 글로벌 경영 노하우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9월 22일 07: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랜드마크 고층 건물인 메세 투름(Messe Turm)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한국은행과 코트라 등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에는 설립 5년차를 맞이하는 신생법인인 유럽우리은행 또한 자리하고 있다.조재찬 유럽우리은행 법인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한켠에 놓인 화이트보드가 눈에 띈다. 보드에는 빽빽하게 현지 기업들의 명단과 숫자가 적혀 있다. 유럽우리은행이 개척하고 매진하고 있는 슐챠인론(Schuldschein Loan) 거래가 성사됐거나 진행중인 곳들이다. 유럽우리은행의 현지 기업금융 성과가 보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셈이다.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때 철수했던 독일에 2018년 11월 다시 법인을 설립했다.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EU내 딜을 수행하는데 런던지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럽우리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독일내 네트워크를 20년만에 부활하며 우리은행은 비즈니스의 방점을 IB영업과 현지 기업금융에 뒀다.
법인 설립 1년째인 2019년 8월, 조재찬 법인장은 신생법인 기틀 마련의 숙제를 안고 독일에 부임했다. 그는 2003년 투자금융부, 2006년 홍콩우리투자은행 개설멤버 등을 거친 IB전문가다.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마켓에서 다양한 신디케이티드론, 선박금융, 구조화금융, FRN 발행 주선 실력을 쌓았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지난 3년간 유럽우리은행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과 자산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엄격한 규제로 유명한 독일에 맞는 리스크관리 체계를 완성했다. 자본금 증자에 힘입어 IB와 현지 우량기업 대출 확대로 취급규모도 획기적으로 늘렸다. 동유럽 영업에 힘을 실어줄 헝가리 사무소를 신설하고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사무소 신설을 추진하는 등 유럽 내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중 현지기업 대출확대는 다른 한국계 은행 해외점포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유럽우리은행의 대출자산 구성 중 현지 우량기업 비중은 35%다. 보통 국내 은행 해외점포들은 지상사 영업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아 지상사 비중이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유럽우리은행은 이 비중이 25%에 그친다.
슐챠인론은 독일 특화 금융상품이다. 독일은 세계적인 굵직한 기업도 여럿 있으나 1350개의 히든 챔피언 기업을 보유한 강소기업의 나라다. 독일 금융기관들은 이들 강소기업에 본드 형태로 론을 지급해 왔고 이는 이 지역만의 금융상품으로 발전했다.
강소기업을 취급하다보니 외국계 은행으로서는 정보와 네트워크의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환율과 금리 수준 등을 고려해야 하는 환경 또한 외국계 은행으로서 섣불리 슐챠인론 시장에 뛰어들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 법인장은 독일에 뿌리내리려면 이 시장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고자 현지 금융기관과의 네트워크에 집중했고 작은 딜부터 시작해 슐챠인론 취급 은행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시장에 얼굴을 몇차례 더 비추고 하나둘 딜을 더 추가하다 보니 어느정도 트랙레코드도 쌓여 갔다. 3년의 노력 끝에 유럽우리은행은 한국계 은행중 가장 슐차인론을 많이 취급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IB딜을 취급한 것도 유럽우리은행의 주된 성과다. 법인 설립 후 1년만에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환경에 처하기도 했으나 유럽우리은행은 시기에 맞는 딜을 찾아내며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팬데믹 기간 동안은 수익성이 검증되고 회복 가능성이 높은 우량자산 딜을 주로 진행했다. 정보기술, 소비재, 헬스케어, 온라인마켓 등이 이에 속한다. LNG 등 특수선박, 화물기, 신재생에너지, 물류창고 등 변동성이 적은 안정적인 섹터에서 실물자산 위주의 담보부 신디론을 다수 취급하기도 했다. 유럽우리은행의 대출자산 중 IB 비중은 40%로 법인의 주요 수익원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유럽우리은행은 아시아와 미국시장의 사이에서 해외 네트워크 내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새로운 성장분야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은행 내 전세계 네트워크가 함께 가동되야 할 때가 있다.
협업을 통해 SK온 대출을 이끌어 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과 관련 배터리 사업을 키우는 국내 기업이 많아졌고 여기서 파생되는 금융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인 SK온에 2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했다. 이 딜은 유럽(독일)과 헝가리, 런던, 뉴욕, LA 등 우리은행 해외 네트워크 5곳이 모두 가동돼 이뤄졌다. 5개의 네트워크와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심사센터, 한국에 있는 차주사 재무 담당자까지 모두 머리를 맞대고 화상을 통해 치열한 논의를 여러차례 진행했다.
조 법인장은 "대출 취급 전 대출관련 담당자들이 화상회의를 진행했는데 독일·헝가리(새벽 1시), 런던(자정), LA(16시), 뉴욕(19시), 싱가포르(08시), 서울(09시) 등 다이나믹한 회의 환경을 경험했다"며 "대출승인을 위한 중요한 회의였기에 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는데 고생한만큼 성과도 있어 기억에 남는 딜"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총괄 헤드쿼터로서 위상과 기반을 갖출수 있도록 힘쓰는 과정에서 관련 인프라 구축에 공들여 왔는데 이중 하나가 유럽 심사센터 신설이다. 우리은행은 유럽지역 내 심사센터를 개설을 추진중이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심사센터가 전세계를 커버한다. 해외 딜의 규모가 커지고 있고 현지 실사나 기법을 면밀히 파악해 심사를 하려면 지역별로 이를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유럽과는 7시간의 시차가 있어 즉각적으로 딜에 대해 논의하기에 시간적 장벽이 존재한다. 유럽을 커버하는 독일법인을 신설해 이를 강화하려 하고 있고 EU 지역의 딜을 늘려가는 만큼 이 지역에도 심사센터가 따로 필요하다고 조 법인장은 지속적으로 어필해 왔다. 결국 본점 차원에서도 이같은 니즈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조 법인장은 "영업강화를 꾀할 때 영업조직만 있어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으며 심사조직이 영업과 한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며 "조만간 유럽에 심사센터 설치가 완료되면 유럽 소재 타깃기업들을 대상으로 원활한 현지실사 등이 가능해져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B와 현지영업 강화 등을 꾀하면서 조 법인장은 새로운 먹거리 마련을 위한 씨도 뿌렸다. 증권 라이선스를 활용해 유로화 변동금리부채권(FRN) 발행 주선 업무를 추가하려는 것이다. 이미 그는 홍콩법인 개설 당시 이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경험이 있다. 이때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은행과 증권업의 겸업이 가능한 독일에서 이같은 사업모델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국내기업 중 유로화 자금조달과 유럽내 인지도 제고를 원하는 기업이 상당하다고 설명한다. 이들 기업을 유럽시장에 데뷔시키는 데 유럽우리은행이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이는 독일 내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니즈와도 관련된 아이디어다.
독일은 금융규제가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유동성 규제의 강도가 높다. 독일 내 금융기관들은 장단기 유동성 비율을 매일 맞춰나갸야 한다. 때문에 유동성 조달 수요에 늘 시달리고 있다.
만약 한국기업이 유로화 FRN 채권을 발행하는데 우리은행이 이를 주선하면서 지급보증을 제공하면 이 채권은 은행 크레딧을 가진 고유동성채권이 된다. 이 경우 유동성비율을 맞춰야 하는 현지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조 법인장은 "유럽이라는 간판을 달고 나올 때부터 유럽우리은행은 이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개발해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출발했다"며 "FRN 발행주선 추진도 이런 관점에서 시작한 것이며 IB와 현지영업 강점에 이은 또 다른 주된 수익원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팬데믹 이후 금융시장은 다시 대면 베이스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실제로 오프라인 네트워킹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며 "채권발행 주선도 지극히 고객 베이스로 움직여야 하는 일인데 현재 시장 트렌드를 감안하면 고객과 투자자들과의 네트워킹 기회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적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3년간의 과업을 마치고 지난달 본국으로 귀임했다. 신임 김현관 법인장이 그의 뒤를 이어 유럽 총괄 헤드쿼터의 위상 강화 노력을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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