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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난국, 그래도 기회는 있다 [thebell desk]

김장환 건설부동산부장공개 2023-04-19 08:25:45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2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 중견건설사 회장으로부터 우크라이나 국가 재건사업 진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대화가 끝날 때쯤에는 설득이 돼버린다. 일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가장 먼저 타격한 게 항만이다. 군사적 요충지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항만 재건이란 게 기술은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 시멘트를 쏟아 부어 무너진 설비를 메우는 게 기본 공사라는 설명이다. 기본 공사만 맡아도 벌어들일 수 있는 매출이 수조원대인데, 이를 노린다고 했다.

그런 '노나는' 공사를 왜 한국 건설사에 맡기겠냐고 물으니 무릎을 칠만한 답이 나온다. 건설 기술력이 뛰어나면서도 타국을 침공한 이력이 없는 국가를 우크라이나가 재건 파트너로 원한다는 것.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끼어있다. 13세기 몽골을 시작으로 폴란드, 오스트리아, 소련 등의 침략을 번갈아 받았다. 타국의 침략 이력이 있는 국가의 건설사에게 국가 재건 공사를 맡기지 않을 배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형사가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 하니 '중견사에 맞는' 답이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철강)처럼 러시아와 교역을 하는 모기업을 두거나 직접 현지에 진출해 있는 대형 건설사는 러시아 눈치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내 기술력 있는 중견건설사라면 어디든 노려볼 수 있는 기회란 얘기다.

#한국식 주택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미국 LA 한복판에 한국 건설사가 지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The BORA 3170'이 주인공이다. 반도건설이 땅을 사들여 시행·시공·임대까지 모두 도맡아 한 자체사업이다. 지난달 말 준공된 해당 아파트는 지하 1층~지상 8층, 252가구 규모로 공급됐다. LA 다운타운에서 차로 10분 거리, 인근에는 호바트 불러바드 초등학교와 LA서울국제공원이 있는 등 지리적 이점도 우수하다. 사업비 1억2000만달러가 투입된 이 사업으로 반도건설은 연간 80만달러의 수입을 거둘 전망이다.

단순 수익을 떠나 다양한 의미를 안긴 사업이다. 미국 주택시장에서 한국 건설사가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은 최초 사례다. K(한국)-주거문화를 최초로 접목한 아파트란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빌트인'을 적용해 한국식 마루판, 붙박이장 등을 각 호마다 세팅했다. 미국식 주거 상식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한류 열풍 때문인지 젊은이들의 호응이 크다는 후문이다. 현지 반응이 좋은 만큼 반도건설은 올해 LA 사업지 인근에서 2·3차 개발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추가 사업지를 물색해 미국 '반도타운' 범위를 보다 넓힐 계획도 세웠다.

주변 만류에도 권홍사 회장이 밀어붙인 사업이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한 모양새다. 확실한 시장 조사를 통해 기회를 노린 결과다. '숱한 기업이 실패한 시장'이란 말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사업이다.

#10여년 전 터진 중동발 유가 급락은 삼성엔지니어링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같은 일이다. '오일 머니'를 노리고 2000년대 초반 중동에 진출하며 저가 수주를 남발한 게 화근이었다.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빅 배스를 단행하고 1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결과는 자본잠식으로 이어졌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역시 주식시장이다. 건설사들의 주가 낙폭은 어떤 산업군보다 컸는데 게중에서도 삼성엔지니어링의 변동은 드라마틱했다. 2011년 장중 한 때 17만5000원에 달했던 주가가 2013년 3월 3만원선까지 떨어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란 '삼성'을 단 기업이 마치 무너질 것처럼 여겨졌다.

그랬던 삼성엔지니어링이 최근 역사적인 반전의 기록을 새로 썼다. 2022년 매출 외형 10조원을 넘기며 부활을 알렸다. 이 기간 세전이익도 창사 이래 최대 수준인 7157억원에 달한다. 값비싼 위기와 발빠른 수주전략 변화가 먹힌 덕분이다. 말레이시아와 러시아 등 해외 루트 다변화를 시도했다. 친환경 비화공 사업도 적극 추진했다. 10년 전 위기 속에서 새로운 해외 사업 기회를 엿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반전도 없었을 듯하다.

"IMF도 겪어봤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겪어봤는데 최근 상황이 가장 불안하다." 모 건설사 임원의 말이다. 불황이 심상찮기는 하다. 그러나 역대급 건설경기 불황이라고 불렸던 시절이 예전에도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도 기회는 앞 사례들처럼 언제나 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적극적으로, 얼마나 잘 밀어붙이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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