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5월 18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채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연초 시장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크레딧 스프레드가 빠르게 축소되자 대기수요와 차환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이 가운데 올해 수요예측 과정에서 한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주관사단의 규모다.과거 통상 2~3곳이 딜을 총괄했다면 최근에는 5~6곳의 대규모 주관사단이 일반화됐다. 발행사의 이같은 결정에는 리스크를 최대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표면상 흥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투자자 저변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A등급 이상의 우량채라도 무조건 달려드는 시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회사채 주관 리그테이블 순위도 지난해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주요 순위를 보면 지난해까지 중위권에 머물던 하우스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한 초대형사는 한 때 DCM을 포기한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캡티브'가 존재한다. 증권사가 속해있는 금융그룹의 다른 계열사가 회사채 수요예측에 투자자로 참여한다. 은행, 보험사, 운용사, 캐피탈사 등은 모두 채권 시장에서 큰 손으로 통한다. 이들을 데리고 들어와야만 주관사로 선정시켜 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심지어 주관사로 참여하면서 자체 채권운용팀까지 참여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법은 발행사와 인수계약을 체결한 경우 IB의 고유재산으로 해당 발행사의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해상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채권운용팀의 경우 제 3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수요예측 참여가 가능한 것으로 자체 해석하고 있다. 인수단까지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2021년 차이니즈월 규제 완화로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원칙을 만들고 사후감독만 받으면 된다. 일각에서는 이로인해 법에 허점이 생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캡티브 수요와 PI 투자로 인해 수요예측에서 일부러 낮은 금리에 주문을 넣으면서 가격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최근들어 연기금들이 수요예측에 잘 참여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제도는 2012년 경쟁을 통해 채권의 적절한 가격을 발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후 발행사 요구에 따라 낮은 금리에 인수해 높은 금리로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수수료 녹이기' 관행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수요예측 제도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올초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루며 모범규준이 수정되기도 했다.
수요예측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가 계속된다면 피해는 결국 증권사에게 돌아간다. 제 살 깎아 먹기인 셈이다. 그리고 금리가 왜곡된 상품이 시장에 풀린다면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입는다. 지난 10년간 만들어온 수요예측 제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경쟁을 넘어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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