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12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64일간의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대장정. 우리금융그룹은 조병규 우리은행장 '선정' 과정을 '대장정'이라고 표현했다. 예상보다 긴, 두달여간 진행된 후보 선정 과정을 진행한 임직원들에겐 대장정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갖은 뒷말이 나오는 게 CEO선발 과정이다. 이번엔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으로 파격과 반전이 거듭된 대장정이었다.시작부터 달랐다. 이원덕 전 행장이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히며 회계연도 중간에 CEO 선정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대부분은 연말에 진행된다. 새로운 회계연도를 시작하면서 새 CEO와 호흡을 맞추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 행장이 최소한 연말까진 임기를 이어가고 새 CEO는 연말쯤이 적당했다.
갑작스런 후임 CEO 선정 과정이니 빠르게 진행하는 게 상례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경영 공백은 하루라도 줄이는 게 좋다. 경쟁 금융그룹들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영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금융은 두달여간 숙고를 거듭했다.
외부엔 '깜깜이'였다. 누구도 유력 후보를 말하지 않았다. 하마평으로 들려오는 말이 별로 없었다. 사석에선 많은 말이 오갔다. 대부분 우리은행 부문장 중 한명이 선임될 것이라고 봤다. 합리적으로 보면 맞는 얘기다. 후보군은 은행의 부문장 2명과 우리카드 대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등 4인이었다. 취임한 지 몇달 되지 않은 계열사 CEO를 은행장으로 올리면 계열사 CEO선정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리금융캐피탈 조병규 대표가 은행장으로 내정됐다. 그가 확정되자 '될 사람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주는 전략, 계열사는 영업'이란 원칙에도 딱 맞는 인물이다.
우리금융은 CEO선정 과정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도 자청했다. 4단계에 걸친 검증 과정에 어떤 항목으로 몇시간씩 인터뷰를 했다는 얘기까지 소상하게 오픈했다.
임종룡 회장의 입김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사외이사들이 간담회를 실시했고 상사와 동료, 부하들에 대한 직급별 인터뷰를 했다. 임 회장은 철저하게 개입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은행장 선출 과정이라면 회장의 의중을 살피는 게 기본이다. 함께 일할 CEO를 뽑는데 회장이 의견을 내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굳이 외부평가기관에 모두 맡길 필요까진 없다. 평판 조회와 업무 역량에 대한 검증을 한 뒤 이사회에서 선출하면 된다. 회장과 코드가 맞는 인물을 1~2주내에 선발해도 아무런 탈이 없는 법이다.
우리금융은 통상의 코드를 모두 깨고 파격을 택했다. 그 결과 선정된 조 행장은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영업 뿐 아니라 전략도 갖춘 인물이다. 영업점포 실적 1위 달성, KPI 연속 1위, 은탑산업훈장 등 수 많은 수식어가 그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금융의 CEO 선정 과정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CEO 선발 과정엔 정답이 없다. 우리은행장 선발 과정이 모든 금융지주에 맞는 해법도 아니다. 하지만 파격을 거듭하며 고민한 CEO 선정 프로그램이 주는 함의는 크다. 외압과 사심이 개입하지 않은 과정으로 선정된 CEO는 그만큼 정당성을 부여받고 역량을 펼칠 힘을 얻기 마련이다.
금융회사를 두곤 '주인없는 회사'라고 말을 한다. 정부나 특정 연줄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곳이다. 과거 우리금융의 CEO선발 과정엔 항상 이런 구설수가 있었다. 누구는 누구 연줄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번 우리은행 CEO 선정 프로그램은 이같은 논란을 종식시킨 첫 걸음이었다.
덧붙이자면 다른 금융지주에서도 또 다른 파격적인 CEO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뽑힌 CEO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한국 금융산업은 그만큼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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