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8월 22일 07시5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 12년 만에 복귀했을 당시 그는 직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IBM과의 경쟁에서 밀려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의 빚을 안고 있던 애플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조조정이다. 불필요한 사업부를 쳐냈고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 이유를 검증하는 작업도 서슴지 않았다. 당신의 롤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 잡스를 직원들은 피해 다니기 바빴다.이 숨 막히는 리더 군상은 현실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보모처럼 직원을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개인의 업무 재량은 가볍게 무시한다. 다만 애플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잡스와 달리 종래 기업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사례를 주위에선 찾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현실 리더의 역량은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당장 눈엣가시인 직원은 잡아내 압박했지만 혁신의 '아이팟'은 만들지 못했다.
최근 인사로 잡음이 들리는 상장사를 보면 이 마이크로 매니징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글자 토씨 하나, 숫자 하나에 집착하는 리더와 그 속에서 어느새 방향을 잃은 팔로워만 남는다. 한 보험업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임원은 "그룹장의 역할은 매출을 3% 더 높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브랜치(branch, 지점)를 글로벌 톱 3로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해 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리더가 이를 간과하고 있어 내부 임직원 불만도 상당한 편"이라 말했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교묘히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 방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하거나 어떤 핑계로 당초 직무가 아닌 곳에 직원을 배치하는 식이다. 사실상 손발을 묶어버리는 처사다. 실제 이는 근래 한 코스닥 보안 솔루션 업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여파로 올 상반기에만 10명 이상의 직원이 짐을 쌌다. 구성원을 더 힘들게 한 것은 깨져버린 신뢰다. 창업주인 오너는 승계를 위한 종잣돈 마련에 급급하고 측근이 내부를 대상으로 휘두르는 칼자루는 나 몰라라 한다는 뒷말만 무성하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오너가 직접 손에 피를 안 묻혀도 되니 얼마나 편하겠느냐"며 "신규 제품 개발 없이 기존 솔루션에만 안주하다 결국 정체에 빠지자 직원들 손을 가장 먼저 놓아버린 셈"이라 말했다.
이들이 리더에게 가장 바랐던 건 믿음이었다.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까진 아니더라도 시작을 주저하게 만드는 환경은 원치 않았다. 여전히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는 이어지고 기업의 체감 경기는 하루하루 더 팍팍해지는 상황에서 마이크로 매니징이 리더의 최후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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