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드아웃 스토리]LS전선, 중책 맡은 '지엘마린' 임무마치고 역사 속으로해저케이블 포설선 'GL2030' 취항 핵심 역할, KT서브마린 인수 영향 3년반만에 청산
김경태 기자공개 2023-08-30 10:17:10
[편집자주]
모든 법인(法人)의 탄생과 지분 관계 형성에는 배경과 목적이 있다. 기업은 신사업 진출, 해외시장 개척, 합작 등을 위해 국내외에 법인을 만들거나 지분 투자에 나선다. 이는 연결 회계에 흔적을 남긴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이뤄지지만 모든 관계가 영속하지는 못한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최악의 경우 청산을 택하기도 한다. 법인을 없애거나 주식을 매도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실적 부진이나 본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 여러 이유로 자취를 감춘다. 이는 기업의 사업 전략을 전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더벨이 기업의 연결 회계에서 법인이 명멸하는 과정을 내밀히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28일 14:22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S전선은 국내 1위 전선업체로 해저케이블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2008년에 국내 최초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설한 이후 사업 확장에 적극 나섰다. 이 과정에서 운송비를 효율화하기 위해 '지엘(GL)마린'을 설립했다. LS전선은 지엘마린에 3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지엘마린은 작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면서 기대감을 키웠다.하지만 3년 반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인수합병(M&A)이 지엘마린의 운명을 결정했다. LS전선은 올 들어 KT서브마린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엘마린은 보유하던 선박을 KT서브마린에 넘기는 등 법인으로서 존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결국 LS전선은 지엘마린을 설립한 지 약 3년 반만에 청산을 결정하게 됐다.
◇야심차게 설립한 '지엘마린', 사업 핵심 '포설선 GL2030'
지엘마린은 2019년 12월 자본금 100만원으로 설립됐다. LS전선이 지분 100%를 보유했다. 본점은 LS전선 동해공장에 마련했다. LS전선에서 해저시공팀장을 역임한 김낙영 이사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사업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지엘마린을 설립했다. 해저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생산한 부품 등을 현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LS전선은 선박을 외부업체에서 빌렸고 선박 대여료가 발생했다. LS전선은 선박을 직접 매입해 운영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판단했고 지엘마린 설립으로 이어졌다.
자금 지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LS전선은 지엘마린에 총 5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로 302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우선 지엘마린이 설립한 지 한 달이 지난 2020년 1월에 116억원을 유증에 투입했다.
이 자금을 활용해 지엘마린은 LS전선의 장비 시운전용 케이블은 32억원에 매입했다. 또 해외 업체로부터 설비를 구매했다. 2020년 12월 네덜란드 ZF마린크림펜(Marine Krimpen bv)과 동력장치를 59억원에 매매하기로 했다. 잔금은 2021년 8월 치렀다.
LS전선은 지엘마린 유증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을 계속했다. 2021년 3월과 8월에 2차례 유증에서 각각 50억원씩을 투입했다. 같은 해 12월 유증에도 45억원을 투자했다. 작년 2월에는 단기 유동성 지원 목적으로 15억원을 빌려줬다. 같은 달 유증에 41억원을 출자했다.
LS전선의 지원에 힘입어 지엘마린의 포설선 'GL2030' 취항이 작년 4월 이뤄졌다. 당시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직접 참석한 대규모 행사를 열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 GL2030은 길이 약 100m, 폭 약 40m의 8000톤급 선박이다. 해저케이블 5000톤을 적재할 수 있다.
GL2030이 취항하면서 LS전선은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경쟁력을 한껏 끌어올리게 됐다. 글로벌 해저케이블 생산·시공 역량을 보유한 곳은 LS전선 외에 프랑스 넥상스, 이탈리아 프리지미안, 스웨덴 ABB, 일본 스미토모가 있다. 이 5개 기업이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의 80%가량을 과점하고 있다.
지엘마린은 GL2030을 취항한 뒤 곧바로 사업에 투입했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과 신안군 안좌도 사이 7km 구간에 해저케이블을 연결하는 사업에서 GL2030을 활용했다. 포설선으로 제대로 된 사업을 펼치면서 지엘마린의 실적도 개선됐다. 작년 매출 65억원, 영업이익 4억원을 거뒀다. 설립 후 매번 적자만 기록하다 처음으로 거둔 흑자였다.
◇LS전선, KT서브마린 인수…지엘마린, '존재 이유' GL2030 넘기고 사라져
LS전선은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엘마린을 만들었다. 자체 포설선 운영을 통한 시너지 효과 발생 등으로 경영 판단이 옳았다는 점을 입증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변수는 지엘마린이 3년 반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KT서브마린은 작년 10월 LS전선을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증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KT서브마린은 선박 등을 취득하기 위한 자금 유치이자 해양에너지 분야 전략적 성장 협력을 위한 것이라 밝혔다. 그다음 달 유증에 LS전선은 252억원을 투입했다. 지분 16.24%를 보유해 KT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KT서브마린은 1995년 설립된 해저 시공 전문업체다. 특히 해저 광케이블 사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LS전선은 KT서브마린의 시공엔지니어링 기술, 선박 운영 능력이 LS전선과 결합되면 해저케이블 분야 프로젝트 수행 역량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했다.
당시 LS전선은 KT와 협의해 KT서브마린 주식 약 629만주를 449억원에 추가로 취득할 수 있는 콜옵션을 확보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LS전선이 단순 협력을 넘어 사실상 KT서브마린을 인수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LS전선은 당시 M&A 자문에 강한 법무법인 광장에 조력을 받아 딜을 추진했다.
그 후 올 1월 지엘마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일이 추진됐다. KT서브마린이 GL2030 선박을 391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KT서브마린은 해저케이블 포설 시공 역량 확보를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거래는 그다음 달 완료됐다. 사실상 지엘마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던 GL2030을 매각하면서 다시 실적이 악화됐다. 지엘마린의 올 상반기 매출은 '0원'이다.
그 후 KT는 올 4월 보유 중인 KT서브마린 주식 808만5000주 중 629만558주를 LS전선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거래는 이달 16일 완료됐다. LS전선은 KT서브마린 지분 48.19%를 가진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KT서브마린은 이달 1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명을 'LS마린솔루션'으로 변경했다.
법인으로서 존속할 이유가 없어진 지엘마린은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올 7월 해산결의를 했고 김 대표를 청산인으로 선임했다. 조만간 청산이 완료되면 탄생한 지 3년 반만에 LS전선의 연결 회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금양인터내셔날 와인 '1865', 11월 한 달 간 이벤트
- [글로벌 파이낸스 2024]"선진 금융기법 도입, 2030 톱 티어 외국계 은행 도약 목표"
- [동방메디컬 IPO In-depth]안정적 재무·실적에도 상장, '글로벌 메디컬 리더' 비전 묘수
- 글로벌 혁신기술 인증 덱스레보, 국내 허가 '청신호'
- [글로벌 파이낸스 2024]신한은행 뉴욕지점, 선제적 체질 개선…지속성장 기반 마련
- 사업부진·재무부담 이중고 SKC, '내실 경영' 본격화
- [레버리지&커버리지 분석]금호타이어, 부채비율 199% ’매출·수익성·재무’ 다 잡았다
- [SK이노베이션 밸류업 점검]'ROE 10%' 목표…조건은 E&S 시너지-배터리 부활
- [ESG 등급 분석]'SKC 편입효과' ISC, 통합등급 두 계단 상승
- '27년의 수소 헤리티지' 현대차 이니시움, 특별한 세가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삼성전자, 한경협 회비 납부 결정 '마무리까지 신중모드'
- HPSP, 예스티 상대 특허소송 '승기 잡았다'
- 주성엔지, 지주사 전환 실패에도 '얻은 것 많다'
- [IR Briefing]삼성SDS, 클라우드·첼로스퀘어 성장에 '밸류업' 더한다
- 소부장 나비효과? SK하이닉스 납품처 이원화 행보 주목
- 박정호의 솔리다임 퇴진, 후속 인사에 쏠리는 눈
- [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 2년]반도체가 촉발한 위기, 그룹 사장단 거취 '폭풍전야'
- [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 2년]과감한 빅딜의 실종, 만만찮은 현실의 벽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일진전기 홍성 신공장 찾는다
- [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 2년]'위기 헤쳐나갈 구심점이 없다' 컨트롤타워 재건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