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반도체의 시간] "AI칩 공급부족, 2027년까지 지속…메모리 제조사가 주도권"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 인터뷰
김혜란 기자공개 2023-12-18 10:09:40
[편집자주]
긴 불황의 터널이다. 한국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주변 생태계 모두 올해 혹한기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3분기 다운턴(불황)의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버텨낸 'K반도체' 기업들의 한 해를 돌아본다. 그리고 반도체의 봄을 기다리며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재무와 사업 전략, 기회 등을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4일 14: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반도체 업계가 불황 탓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분위기가 내내 침체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은 다시 반도체의 시간을 빠르게 당길 수 있다는 기대감과 활기를 불어넣었다.국내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안기현 전무(사진)는 "지금은 HBM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이 기조는 최소 2027년까지 계속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메모리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다퉈 HBM 캐파(CAPA·생산능력)를 확대하고 있다. HBM 사업은 앞으로 메모리 제조사의 성장모멘텀이 돼줄 전망이다. 지난 11일 안 전무를 만나 올해 반도체 시장을 돌아보고 내년을 전망해 봤다.
◇불황 고리 끊을 HBM
올해 반도체 산업의 화두는 AI용 메모리였다. 글로벌 메모리 제조사들은 너도나도 D램과 낸드플래시 감산에 나섰으나 HBM 분야만큼은 투자를 확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슈퍼사이클(초호황)이었던 반도체 산업이 갑자기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것도 예견하지 못했지만, 불황의 와중에 HBM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거란 점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안 전무는 "우리가 전망하지 못했던 일 두 가지는 '챗GPT'(생성형 AI)가 이렇게 많이 사용될 줄 몰랐고, 챗GPT를 사용하는 데 하드웨어(반도체)가 이렇게 많이 들 줄 몰랐단 것"이라며 "AI 시대가 빨리 올지 몰랐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됐다. 그래서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엔비디아도 (그래픽 연산을 처리하는 용도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AI 반도체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 제조사도 AI 반도체에 HBM이 사용될 줄 몰랐고 그래서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GPU도 HBM도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안 전무는 반도체 산업이 AI시대를 맞아 변혁기에 있는 지금은, 시스템 반도체 회사보다 메모리 제조사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AI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엔비디아는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엔비디아의 AI반도체 'H100' 등은 TSMC의 고급 패키징 솔루션인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으로 제조된다. CoWoS는 GPU와 HBM을 기판 위에 올려 한 개 칩처럼 만드는 이종결합 기술을 말한다. HBM이 없으면 TSMC도 엔비디아의 GPU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HBM도 공급량은 한정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 HBM 캐파를 올해보다 최소 2배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시장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안 전무는 "(HBM은) 제조자의 공급 역량에 대한 문제로 공급이 제대로 안 돼 내년까지 주문이 밀려있다"며 "지금 시장은 공급하는 물량만큼 제한돼 있다. 이 기조는 3년 이상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엔비디아의 AI칩만 쓰이고 있지만, 이런 구도가 영원하진 않다. 다른 팹리스들도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이들이 AI칩을 내놓기 시작하면 시장이 커지고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내 네이버나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앞다퉈 서버 투자에 나설 것이고 이에 따라 AI칩 수요는 더 확대될 것이란 게 안 전무의 전망이다.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까지 메모리 3사가 독과점한다. 안 전무는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셋이고 AI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며 "시스템 쪽보다 3사만 경쟁하는 HBM 회사의 전망이 더 좋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는 어떤 기회가
특히 HBM은 D램을 8단까지 쌓아 한 번에 패키징하는데, 이러면 기존 D램 8개를 각각 팔 때보다 6배는 더 비싸진다. 안 전무는 "엔비디아도 (SK하이닉스로부터) HBM을 비싸게 사주고 있다. 그래야 제조사가 돈을 벌어서 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대량 공급 중인데, 지금은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에 HBM 주문을 넣어도 생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TSMC의 CoWoS와 같은 첨단 패키징 공정을 수행할 역량이 있는 회사가 또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앞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AI칩 시장 확대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는 얘기다. 안 전무는 "앞으로 팹리스들이 GPU든, 신경처리망장치(NPU) 등 AI 칩이 우후죽순 나올 것"이라며 "그러면 팹리스는 칩을 제조하기 위해 파운드리에 맡겨야 하는데 수요가 확 늘어나는 만큼 TSMC뿐 아니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을 둘 다 하고 있다. HBM도 제조하고 파운드리에서 HBM과 GPU를 결합해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고객사가 주문만 하면 한 번에 만들어줄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단 얘기다. 지금은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으나 앞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글로벌 팹리스의 HBM 수주를 따내고, 특히 HBM부터 파운드리까지 일괄 수주하는 성과를 보여주며 삼성만의 차별성을 드러낸다면 주가가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게 안 전무의 생각이다.
◇HBM 생태계 키워야 한다
앞으로 커질 AI 시장에 대비하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아니라 관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안 전무는 "첨단 HBM 관련 소부장 대해 연구·개발(R&D)와 테스트를 중점적으로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며 "소재와 장비, 부품의 원천 기술 개발을 산·학·연(산업계와 학계, 연구분야)이 같이 하고 상용화로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정부 주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인메가클러스터가 소부장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데, HBM 관련해 소부장이 연구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인프라를 빨리 구축해 가동해야 한다"며 "(여기에서) HBM 최종사용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체적으로 할 수 없는 소부장 관련 연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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