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07시3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하반기. 중소 제약사를 중심으로 영업구조 변화가 감지됐다. 국내 영업망을 탄탄히 갖춘 중소 제약사들이 영업인력을 대거 외주화하기 시작했다.의약품 판매 대행업체 'CSO'의 확산이다. CSO는 의약품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개인사업자가 의료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여러 제약사 품목을 대신 판매해 준다. CSO는 의약품도매업체와 달리 일정 규모의 창고를 두거나 약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명문제약, 경동제약, 안국약품, 유유제약, 일성신약 등 다수 중소 제약사가 영업 외주화에 나섰다. 대부분 코로나19로 적자 위기에 몰린 곳들이다. 한 곳에서 많게는 180여명의 영업 직원이 떠났다. 대표적인 이유는 실적 개선이다. 영업 적자 상황이 CSO 전환을 부추겼다는 얘기다.
CSO 전환은 실적 개선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말. 그럴법해 보였다. 연구개발까지 하려면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원가며 인건비며 오르지 않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점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중소 제약사의 실적개선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명문제약은 2022년 CSO 전환 후 매출이 10% 늘고 영업적자를 탈피했다. CSO 효과를 톡톡히 보는 듯했으나 이듬해 수익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매출이 12%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63% 줄었다.
안국약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매출이 14%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50% 가까이 급감했다. 감기약 대란으로 혜택을 본 대표적인 제약사임에도 효과를 오롯이 누리지 못했다.
수익이 악화한 공통적인 배경으로 CSO가 지목된다. 초기에는 인건비 절약 등으로 CSO 효과가 극대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CSO는 매출이 늘수록 지급 수수료도 덩달아 커지는 구조다. 메인 품목일수록, 경쟁이 높은 영역일수록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CSO에게 지급하는 판매대행 수수료는 평균 30~40%, 많게는 60%다.
안국약품의 경우 2022년 기준 매출액 2054억원 중 지급수수료로 726억원을 썼다. 수수료의 대부분은 CSO로 갔다. 과도한 수수료로 판관비가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쯤 되면 이들이 원했던 건 실적 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출보고서 의무 등 강화된 판매 규제, 세무당국의 집중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CSO 전환을 택했다는 말이다. 제네릭 판매에서 뗄 수 없는 리베이트, 현실과 달리 조여오는 규제당국의 압박이 중소 제약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법하다.
진짜 속사정이 어떻건 본질은 영업방식의 변화만으로는 제약사가 성장을 꾀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결국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복제품이 아닌 자체 약으로 승부를 거는 제약사가 살아남는다. 중소 제약사의 CSO 전환은 '포장지만 바꾼 빈껍데기'일 뿐이었을까. 혹은 더 큰 성장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이들의 비전이 어떤 곳으로 향해 있는지 눈여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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