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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유사 보증수표' [thebell note]

고진영 기자공개 2024-04-18 07:35:56

이 기사는 2024년 04월 17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술품의 핵심은 창작성이다. 그래서 상업영화란 말은 (그 의미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사용된다. 흥행 극대화를 위한 일련의 규칙 안에서만 감독의 비전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불편한 구석, 뾰족한 요철을 깎아내고 대신 대중성을 얻는다.

물론 이런 법칙을 충실히 따른 영화마저 종종 흥행에 실패한다. "비상선언이 망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관객 수를 추정하는 시스템이 있긴 해도 완벽한 예측은 어렵다는 영화계 종사자의 한탄이다.

스튜디오들이 성공한 프랜차이즈를 가지려고 열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캐릭터나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물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디즈니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있다.

이미 수십년간 할리우드의 주류는 프랜차이즈였지만 속편을 제작한 역사는 더 길다. 1930년대 <벅 로저스>같은 에피소드형 영화가 있었고 이후 대형 스튜디오들이 제임스 캐그니나 존 웨인 같은 스타들로 시리즈 아닌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2000년대부턴 <캐리비안의 해적>, <해리포터>, <어벤저스>가 줄줄이 등장하면서 영화계를 프랜차이즈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에 있다. 사랑받는 캐릭터는 개연성 부족한 플롯과 허약하고 응집력 없는 서사, 진부한 대사 기타 등등을 전부 못본척 눈 감아주게 만든다. 예를 들면 <테이큰> 시리즈가 그렇다. 액션까지 굼뜨고 지루해졌으나 3편은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가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를 안 본 사람이다.)

그러니까 연속성이 주는 힘이야말로 영화산업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에 가깝게 바꿔줄 수 있는 유사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상 최고수익을 거둔 50개 영화 중에서 메이저 프랜차이즈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은 <바비>와 <타이타닉> 둘 뿐이다.


국내는 좀 늦었다. 2018년 <신과 함께> 연작이 한국형 프랜차이즈 가능성을 처음 연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가장 확고히 자리잡은 것은 <범죄도시> 시리즈다. 1~3편 관객 수가 3000만명을 넘겼다. 국내 시리즈물 관객 중에선 가장 많다.

이달 개봉하는 4편이 1000만명을 동원한다면 벌써 세 번째가 된다. 게다가 다른 상업영화들이 <범죄도시>와 맞붙기를 꺼려하다 보니 극장가는 적수없는 빈집이다. 8편까지 제작을 목표하고 있어서 투자배급사인 플러스엠은 당분간 영화사업으로 손해볼 걱정은 없어 보인다.

물론 프랜차이즈가 만능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둬야한다. 극장의 무적같았던 MCU가 주춤한 걸 봐도 프랜차이즈 수명엔 한계가 있다. 대개 4편부터 고비를 맞는데, 리스크를 피하려다 뻔해지거나 스토리 생명력을 연장하려다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이 커지거나. 보통 이런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할리우드에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nothing)'는 말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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