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 사각지대]진품증명서 양식 놓고 공급·수요자 입장 대립⑤ 기재 범위 따라 화랑 책임부담 증가, 감정 근거 구체화 요구에 감정업계 반발
서은내 기자공개 2024-11-22 09:15:28
[편집자주]
미술품 물납제 시행, 미술품 담보대출 수요 등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감정 서비스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인프라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미술품 감정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업계의 오랜 난제로 되풀이되는 중이다. 때마침 감정 관련 법이 개정되며 정부가 감정체계 손질을 예고하고있다. 더벨은 현재 미술품 감정과 관련된 업권의 논쟁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제도 변화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20일 08: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진품증명서의 발급은 올해 시행된 미술진흥법의 핵심 조항이다. 진품증명서에 기재할 내용을 놓고 업권 전문가들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여러 견해가 대립하며 또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진품증명서'라는 용어 정의부터 증명서 발급자의 책임 범위, 감정기관 감정서의 구체적 근거 기재 등을 놓고 논란거리가 많은 상황이다.미술진흥법에서 말하는 진품증명서는 미술품을 판매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보증서다. 작품을 판매하는 주체인 화랑, 딜러, 작가가 구매자가 요청시 진품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동안 국내 화랑, 옥션사들이 '보증서'라는 이름으로 이를 발급해오긴 했으나 발급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업계에서는 해당 법조항의 입법 취지에 대해 위작 유통을 방지하고 유통업자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차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법에는 진품증명서 양식과 함께 감정기관에서 발급하는 감정서의 양식도 함께 정부에서 고시하도록 하고 있다. 대립된 의견을 조율하고 실효성 있는 양식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의견 대립 주요 쟁점, 진품증명서 '책임 범위'
진품증명서 법조항 자체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진품증명서는 물론 감정서를 놓고도 해당 증빙의 수요자인 작품 구매자, 소장자와 공급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어서다.
이 두 문서가 수요자 입장에서 제 효력을 갖추려면 최대한 서식에 기재되는 종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반대로 서식의 공급자인 판매유통업자나 감정기관 입장에서는 최대한 기재 범위를 좁혀야 발급에 드는 유무형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선 진품증명서에 관한 주요 쟁점은 '진품증명서'의 정의다. 미술진흥법에는 '진품증명서 또는 진품증명서에 갈음하는 증명서'로 표시돼있다. 하지만 실제 업계 통용 문서의 이름은 '작품 보증서'다. 작가가 발급하면 '작가 확인서'라 일컫는다.
때문에 핵심용어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으리라는 예상이다. 한 미술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혼동의 여지가 있다"며 "실무와 맞지 않고 진품증명서와 이에 갈음하는 증명서가 각각 어떤 서식에 대응하는지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용어 정의가 모호하다보니 진품증명서 발행자 책임 부분도 논란의 지점이 된다. 임애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새로운 진품증명서의 보증 내용을 어느 범위에서 정할지, 즉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보증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보증의 범위를 판매사실에 국한하거나 면책 규정을 둘지 여부에 대해서 현재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품증명서 발행 시 판매업자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은 불가피하다. 문서에 기재되는 내용의 범위에 따라 그 부담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판매업자에게 진위에 대한 의견을 요구할 경우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해야할 가능성도 생긴다. 그럴 경우 거래가 위축되거나 증명서가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
진품증명서에는 기존에 기재됐던 작품의 내용이나 구매처 외에 발급자가 보증하는 보증의 기간, 조건 등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현재 통용되는 보증서의 형태에서 크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시각도 나온다.
임애리 변호사는 "진품증명서 발행은 판매자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고 표준 서식 역시 그런 관점에서 개발될 것으로 본다"라며 "다만 서식이 너무 복잡해지거나 현장 상황과 동떨어질 경우 업계 반발이 생길 수 있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어 최적 양식 개발에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감정서 "진위 근거 구체화 해야" vs "위작자에게 악용될 우려"
감정기관이 발급하는 감정서 양식에 관해서도 이견이 있다. 양식체계를 보다 구체화하겠다는 게 문체부의 기본 방향이다. 그동안 진위, 시가감정 소견서에서 대체로 판단 결과만 기재돼 왔을 뿐 판단의 근거나 논리 기재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보인다.
감정업계에서는 감정서에 판단 근거를 기재할 경우 그 내용 자체가 위작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주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작의 근거가 알려지면 해당 사실을 피해 작품을 위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감정기관 대표는 "현재 수준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쓰기란 어렵기 때문에 문체부 추진 감정서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며 "만약 위품 소견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감정서 때문에 소장자가 작품 처분이 어려워졌다고 문제를 삼게 되면 감정기관이 져야 할 책임이 더 커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진흥법상 감정업의 범위에 있어서 시가감정이 빠져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감정기관 관계자는 "미술진흥법에 명시된 감정의 영역에 시가감정이 포함되는지가 분명치 않아 시가감정 전문 인력이 보호받기 어려운 구조"라며 "오래 전부터 부동산 감정평가사들이 미술품 시가감정에 진출하면서 충돌이 발생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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