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1월 25일 07:50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중견회사 A는 주주가치 제고(밸류업) 차원에서 자사주를 수년 간 취득해 왔다. 그 중 3분의 1만 소각하고 나머지는 신설 중인 재단에 넘겼다. 표면적인 이유는 밸류업이지만 자사주가 공익법인으로 가면 의결권이 부활한다. 재단에 넘어간 지분은 사실상 그룹 오너의 우군이다.#. B기업은 2차전지 수혜로 한창 주가가 뜰 때 오너가 지분 일부를 팔았다. 그 돈을 회사에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챙겼다. 이후 회사는 시설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유증 자금 일부는 차입금을 갚는데 쓴다고 공표했는데 시장에선 오너 대여금 갚는데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때문인지 요즘 시장의 화두는 주주가치 제고다. 이에 발맞춰 대기업들은 공시를 통해 중장기 밸류업 정책을 알리고 행동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0조원 규모 자기주식 매입을 깜짝 발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반적인 취지를 공감하면서 각론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지배구조, 즉 대주주에 쏠린 이사회를 바로잡고 모든 주주를 위한 경영이 핵심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최적의 자본배분, 자본효율화가 우선이란 입장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경영권 분쟁 중인 곳에서도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워 자신의 당위성을 호소했다. 그러다 보니 밸류업은 실제 주주권익 제고를 위해 움직이는 기업도 있지만 강력한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기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들도 보인다. 명분만 밸류업을 내세우고 딴짓을 한다. 앞서 예시로 든 A기업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밸류업 행동을 하는 듯 했지만 그 이면에는 오너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가 감춰져 있다. B기업의 경우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에 대주주 이해관계를 엮으면서 오히려 시장의 신뢰가 깨졌다.
이러면 밸류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내 증시에 누가 들어오겠는가. 오죽했으면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나올까.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의 거래량이 코스피·코스닥 등 한국 주식시장 거래량을 추월했다. 장난으로 만든 도지코인이 코스피 거래량을 넘어선다.
코인이 그만큼 붐이란 뜻이지만 반대로 보면 국내 증시가 취약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자본시장 발전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다.
수년 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한창일 때, 자본시장에서 나돌던 '그린 워싱'이란 말이 떠올랐다. 녹색채권을 찍어 온실가스 감축 등 친환경 사업에 일부 쓰면서 슬쩍 채무상환 등에 사용하는 꼼수. 최근 주주가치 제고로 포장된 오너의 사익 챙기기 사례를 보면 '밸류업 워싱'이란 말도 조만간 유행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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