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로 메리츠증권]레드오션 정통 IB서 메리츠 DNA 고수할 수 있을까②고수익 추구 사실상 포기…일각선 '메기 효과' 기대도
백승룡 기자공개 2025-02-28 07:54:12
[편집자주]
여의도의 시선이 메리츠증권으로 쏠리고 있다. 그간 부동산금융, 고금리 기업대출 등으로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해 왔던 메리츠증권이 돌연 ‘레드오션’인 정통 IB, 리테일 사업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메리츠증권의 이러한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벨은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있는 메리츠증권을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2월 26일 08시0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리츠증권의 정통 투자은행(IB) 비즈니스는 미미했지만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년에 한 건꼴로 보험사 자본성 증권 대표주관을 맡았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100bp(1bp=0.01%포인트) 안팎의 높은 수수료율이다.일반적인 회사채 인수 수수료율이 20bp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레드오션’ 시장에서도 수익성에 최우선 가치를 부여하던 메리츠증권은 정통 IB를 본격적으로 확장하더라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벨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KDB생명보험 후순위채 한 건의 대표주관 딜을 맡았다. 발행 규모 2000억원으로 공모 희망금리밴드 5.4~6.0%를 제시했는데, 3030억원의 투자수요가 몰리면서 ‘오버부킹’에 성공했다.
수수료를 50bp로 제시한 메리츠증권은 이 딜만으로 10억원을 챙겼다. 이외에 여신전문금융채(FB)·자산유동화증권(ABS) 등에서는 딜을 여럿 수임했지만 부채자본시장(DCM)의 꽃으로 불리는 일반회사채(SB) 주관실적으로는 KDB생명보험 딜이 유일했다.
앞선 2023년에도 SB 대표주관은 KDB생명보험 후순위채 한 건뿐이었다. 당시 발행액은 1200억원이었는데, 수수료율은 125bp에 달했다. 2022년에는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흥국생명 후순위채 △흥국화재 신종자본증권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 등 4건의 딜을 주관했는데 수수료율은 70~125bp 수준으로 높았다. DCM 비즈니스에서도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딜을 선별적으로 맡는 특징이 지난 수년간 뚜렷하게 나타났던 셈이다.
이는 외형 경쟁보다 실질적인 수익성을 중시하는 메리츠증권의 ‘실용주의’와도 결이 맞았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2023년 초 롯데건설 대상으로 조 단위 공동펀드를 조성한 이래 SGC E&C(옛 SGC이테크건설), 홈플러스, 엠캐피탈 등에게 기업대출을 진행하면서 최소 10% 이상의 금리를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고려아연을 상대로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면서 연 6.5%의 금리를 책정하기도 했다. 고려아연이 속한 AA+등급의 민평금리가 3.2~3.3%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배 수준의 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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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증권은 높은 수수료 수익을 추구해 선별적으로 딜을 수임해 왔다.
다만 메리츠증권이 본격적으로 IB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이상, 이처럼 수수료 높은 딜만 선별적으로 맡는다면 이제는 본부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다. 메리츠증권은 IB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기업금융본부 인원을 올해만 20명 안팎, 궁극적으로 50명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기업금융본부의 수수료 수익이 50억~100억원은 돼야 한다는 의미인데, 일부 소수의 딜 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다. 결국 여타 하우스처럼 수수료 수익이 적더라도 최대한 많은 딜을 수임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김종민 각자대표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기업금융부문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가치창출을 중시하는 메리츠의 DNA는 유지될 것”이라며 “이를테면 헤드라인 장식에만 의미가 있는 리그테이블 경쟁 같은 것은 지양하고 외형 경쟁보다는 실질 가치 창출을 고수할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이 같은 방향성이 가능하겠냐는 시각이 증권가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한 증권사 본부장은 “DCM만 봐도 이미 경쟁이 치열해 회사채 딜 수수료율이 일반적으로 20~30bp 수준에 불과한데,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추구할 수 있는 실질 가치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ECM은 상대적으로 수수료율이 높긴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아, 증권사들이 DCM에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관계를 구축해 나가려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이 막히고 증권사들이 돈 벌 곳이 없으니 정통 IB로 몰리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IB 후발주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캡티브 영업, 자기자본투자(PI) 등으로 시장이 왜곡되는 추세를 경계하고 있다. 캡티브 영업은 증권사가 그룹 내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약속하면서 발행사로부터 주관사 지위를 받는 관행을 일컫는다.
PI 영업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회사채 발행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트랜치(tranche)를 달리해서 직접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자발적으로 발행사 수요예측에 우호적인 금리로 참여, 향후 주관사 선정을 위한 접점을 만드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형 증권사들이 장악한 IB 비즈니스에서 후발주자들이 틈새를 벌릴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돈을 쓰는 것 뿐”이라며 “특히 메리츠금융그룹은 은행 계열이 없어 리스크 관리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탓에 발행사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등의 공격적인 영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영업 방식이 아닌,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메기'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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