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외길' 주식 베테랑 김태홍 대표 "거북이처럼, 그러나 끝까지"…시대를 관통한 운용 전략의 힘
고은서 기자공개 2025-03-28 16:13:29
이 기사는 2025년 03월 24일 07시5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주식형 펀드시장의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한 전통파 펀드매니저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뮤추얼펀드 도입기부터 2006년 적립식펀드 열풍, 2009년 랩어카운트 전성기까지 한국 자산운용사의 굵직한 흐름을 직접 겪으며 성장한 인물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시장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수십 년간 운용을 경험한 그는 바로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다.김태홍 대표가 그로쓰힐자산운용을 설립한지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다. 김 대표는 금융 시장이 변화할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투자 철학을 확립해왔다. '시장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가치관으로 그로쓰힐자산운용을 설립한 그는 지금도 시장을 관찰하며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

김 대표가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그에게 주식 계좌를 만들어주었는데, 당시 은행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주식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이게 그들만의 리그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식 시장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주식 시장이 단순한 운이 아닌 논리와 분석으로 움직인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스스로 데이터를 찾고 분석하며 금융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996년, 그는 한일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금융 커리어를 시작했다. 기업 분석을 담당하며 본격적으로 리서치 업무를 익혔다. 하지만 당시 국내 증권사 리서치는 기업이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에 의존해야 했고, 글로벌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도 낮았다. 결국 그는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년 후 미국 로체스터대학으로 떠나 파이낸스를 전공(MBA)하며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받았다.
MBA를 마친 김 대표는 2000년 대우증권 국제조사부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금융 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섹터를 담당하며 기술주 분석을 시작했다. 당시 IT 버블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고 기술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는 거품 속에서도 진짜 성장할 기업을 찾는 데 집중한 그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분석하는 습관을 들였다.
2003년, 그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떠오르는 자산운용사였던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로 영입된 것이다.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수탁고는 1조원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으나 공격적인 투자 전략과 차별화된 운용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미래에셋의 대표 펀드였던 '디스커버리'를 맡으며 본격적인 운용 실력을 발휘했다. 디스커버리 펀드는 2005년 약 90%의 수익률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미래에셋의 주식형 펀드들은 수탁고 2조원을 돌파했고 그는 최연소 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업계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도전을 하기 위해 가치 투자의 명가인 프랭클린템플턴으로 이직했다. 2008년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 붕괴를 경험한 그는 투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몸소 체험한 그는 펀드를 운용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투자 전략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결국 그는 2009년, 과거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함께했던 박건영 사장과 함께 브레인자산운용을 공동 창립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브레인자산운용에서 그는 랩어카운트 시장의 성장 흐름을 타고 빠르게 운용 규모를 확장했다. 코스피가 1000선이 붕괴하는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진정한 장기 투자를 실현할 운용사를 직접 만들자.' 2012년, 그는 자신의 철학을 실현할 독립 운용사인 그로쓰힐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그가 브레인자산운용을 떠날 때 수탁고는 4조원을 넘어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트랙레코드: '롱숏 강자' 그로쓰힐 "고객 장기 수익 보호"
김 대표가 이끄는 그로쓰힐자산운용은 롱숏펀드를 중심으로 꾸준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대표 펀드인 '그로쓰힐다윈멀티스트레티지 일반사모투자신탁'은 설정 이후 244%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33%)을 압도했다. 최근 2년간 수익률도 54%로, 같은 기간 코스피 5% 대비 월등한 성과를 보였다.
김 대표가 자부하는 이 펀드의 강점은 하락장에서도 강한 방어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상승장에서는 시장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서도 하락장에서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김 대표는 "고객의 장기 수익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 투자 원칙"이라며 "단순히 시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장에서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처럼 시장이 급락했던 시기에도 방어적인 전략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했다. 같은 해 설정한 AI 기반 투자 전략을 도입한 'AI퀀트펀드'는 2023년 11월 설정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코스피보다 7%이상 수익을 냈다.
김 대표는 "AI는 인간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며 "AI 모델이 발굴한 종목과 사람이 선택한 종목이 결합될 때 더 높은 시너지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에셋에서 주식운용본부장을 지내면서 '미래에셋디스커버리펀드', 단일 주식형펀드로선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미래에셋 3억만들기 솔로몬펀드' 등 대표 주식형 액티브펀드를 운용하기도 했다.
◇투자 철학: 장기파트너 같은 '금융집사'
김태홍 대표의 투자 철학은 크게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산업 변화에 대한 이해와 혁신 기업 발굴이다. 그는 시장의 흐름을 읽고 장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산업을 초기에 포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방산, 조선, AI 등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핵심 종목을 발굴해 장기 보유하는 전략을 취한다.
두 번째 원칙은 산업 사이클과 경쟁 구도의 변화를 읽는 것이다. 같은 산업군이라도 지배적 기업과 뒤처지는 기업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철학이다.
세 번째는 턴어라운드 가치주 발굴이다. 한때 강했던 기업이 구조적인 문제로 위기를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라면 반드시 재도약의 기회가 온다고 그는 확신한다. 김 대표는 "모든 기업이 성장주였다가 결국 가치주로 바뀐다"며 "성장할 때는 성장주로, 하락할 때는 가치주로 보이지만 진짜 핵심은 그 기업이 다음 사이클에서 다시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그로쓰힐자산운용은 매크로 분석 모델을 적극 활용해 시장 변동성을 방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인버스 ETF 및 숏포지션을 활용한 헤지 전략을 병행해 하락장에서도 고객 자산을 보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본 사례를 많이 봤다"며 "투자자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로쓰힐자산운용이 창립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장기 고객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은 그의 투자 철학이 현실적으로도 유효함을 증명한다.
◇업계 평가 및 향후 계획: "리테일 시장, 해외 주식 확대"
김태홍 대표는 올해 시장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둔화될 가능성은 크지만 침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쏠렸으나 이제는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면서 신흥시장으로 다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은 어떨까. 그는 올해 한국 시장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오랜 기간 한국 시장에서 이탈했지만 만약 글로벌 유동성이 다시 공급된다면 자연스럽게 MSCI 비중을 맞추기 위해 한국으로도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 대표는 AI가 단순한 단기 테마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메타, 구글,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AI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유망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방산과 원자력 산업도 마찬가지다. 방산 산업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점점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은 탄소중립 기조에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잘 나갔던 업종이 올해도 계속 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기존 강세 섹터를 따라가기보다는 앞으로 2~3년 동안 사이클이 돌아올 업종을 선제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항상 예상대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에 변화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로쓰힐자산운용이 준비하는 것은 리테일 시장 확대다. 해외 주식 운용 비중도 더욱 늘릴 예정이다. 그로쓰힐자산운용은 2022년부터 일임으로 해외 주식을 운용해 왔다. 일임 계좌 기준 S&P500 두 배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예상한 수익률에서 벗어나지 않고 위기가 왔을 때는 클라이언트를 보호해주면서 조금씩 거북이처럼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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