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1년 07월 21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텔레시스가 올 1분기 자본잠식에 빠졌다. 2009년 휴대폰 사업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단말기 사업 투자가 기름을 부었다.
신사업에 뛰어든 만큼 개발비, 마케팅비용 등 고정비 부담은 지속됐다. 일례로 지난해 휴대폰 광고비로 지출된 금액만 144억원이다. 전년(68억원)대비 두배가량 상승한 수치다. 휴대폰 사업 관련 판매수수료도 490억원이 들어갔다.
시장의 경쟁은 점차 심화되면서 휴대폰 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8.2% 상승한 883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률은 -41.4%, EBITDA는 -304억원까지 떨어졌다. 신사업 육성 실패가 전반적인 수익성 저하로 이어진 셈이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SK텔레시스가 선택한 방법은 유상증자다. 최신원 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었다. 지난 6월24일 SK텔레시스는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 500만주를 발행해 제3자 배정방식으로 전량을 주당 850원에 최 회장에게 넘겼다.
최 회장의 행보는 당장 기업 회생을 위한 오너의 헌신으로 볼수도 있었다. 단순 액면가(500원)로 봤을 때는 최 회장이 웃돈을 주고 지분을 매입한 결과도 된다. 여기에 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진 상황에서 45억2000만원의 사재를 털었다는 점은 희생적인 결단으로도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업계에서 나온 얘기는 최 회장의 SK텔레시스 주식 헐값 매입 의혹이다. 비상장주식의 평가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최 회장이 유상증자를 통해 배정받은 주식 가치가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한참 밑돈다는 이유에서다.
비상장 주식은 시장에서 참고가격(reference price)을 갖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나뉜다. 제3의 주식시장으로 불리는 장외시장에서 소액주주들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면 해당 거래가가 표준가격으로 인식될 수 있다.
SK텔레시스는 전자에 속한다. 국내 대표적인 장외주식 거래시장에서 형성된 SK텔레시스의 가격은 20일 종가 기준4250원 선(피스탁 기준). 지난 6월 24일 최 회장이 유증을 통해 지분을 늘렸던 시점에는 4000원에 거래가를 형성했다. 개별 거래 사이트마다 다른 지표를 내놓고 있지만 변동폭은 ±500원 안팎에 불과하다. 2008년 한때는 가격이 1만2000원까지 올라선적도 있다.
물론 장외주식시장에서 주식 가치가 완벽한 공신력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상적으로 거래가 되는 상장사 주식시장에 비해 투기성이 크고 거래량이 적기 때문이다.
또 SK텔레시스는 지난 3년여간 평균 5000억원대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순손실을 기록해왔다. 실질적인 주당순이익(EPS)나 순자산가치(BPS) 산출이 안되니 가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SK텔레시스가 장외시장에 다량으로 풀려있는 주식이라는 점을 보면 이곳에서 형성된 가격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장외시장 주식 가격 산정은 매도가와 매수가의 평균점으로 책정된다. 그만큼 장중에 풀려있는 주식이 많을 수록 객관성을 가지는 표준지표에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SK텔레시스의 총 주식 중 소액주주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율은 22.1%(169만7720주)에 달한다. 거래자의 '선호'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동시에 헐값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그동안 일부 기업들이 시장에서 보여준 관행이 이번 유증을 통한 최 회장의 지분 늘리기와 '오버랩' 돼 의혹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상장사의 주식을 헐값에 오너 일가에 매도한 후,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 등을 통해 차익을 챙기는 일은 그동안 재계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해왔다. 얼마전 검찰 수사를 받았던 태광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SK텔레시스는 계열사를 통한 통신장비 유통 위주의 사업구조가 강점으로 꼽히는 업체다. 비록 수익성이 나쁘긴 하지만 SKT, SK브로드밴드 등 계열사의 수요가 매출 근간이다. 그만큼 향후 언제든지 계열사를 통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해석이 아니더라도 최 회장은 이번 유증을 계기로 확실히 얻은 게 많다. 1.1%에 불과하던 SK텔레시스 지분을 39.5%까지 끌어올리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는 점만 해도 그렇다. 최대주주인 SKC는 77.1%에서 47.46%로 지분이 줄었다.
SK텔레시스는 8월초 다시금 1300만주(78억원, 주당 600원)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C가 실권하고 최 회장이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결국 최 회장이 지난 6월 단행한 SK텔레시스 지분 늘리기는 마침내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사촌형제 간 계열분리'를 알리는 첫단추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시선들이 최 회장의 이번 SK텔레시스 유증을 통한 지분 늘리기를 단순히 '오너의 희생'이라고 평가하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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