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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를 잊으라

이장준 기자공개 2021-06-16 09:15:50

이 기사는 2021년 06월 15일 07:4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B를 잊으라."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KB국민카드 임원들에게 수시로 이같이 주문한다고 한다. 소속에 얽매이지 말고 철저히 브랜드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하라는 의미다. 그룹 차원에서 모토로 내세운 '원 펌 원 KB(One firm One KB)'와는 다소 상충되는 모습이다.

그동안 KB를 비롯한 국내 금융그룹들은 연계영업 등 계열사 간 시너지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캐피탈사의 자동차금융 가운데 금리 경쟁력이 중요한 신차할부는 카드사에 넘기고 은행을 찾은 대출 고객 중에서 한도가 아쉬운 이들을 저축은행에 소개하는 식이다. '상부상조' 전략은 그룹 전체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다만 향후에도 같은 전략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상품을 플랫폼에 진열해 수익을 내는 빅테크(big tech)의 등장에 금융사는 단순 제조업체로 전락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졌다. 금융그룹들은 여기 종속되느니 직접 플랫폼사업자가 되기로 했다. 카드사가 주도하는 페이사업을 시작으로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아우르는 플랫폼을 구현할 계획이다.

플랫폼의 성공 여부는 확장성에 달렸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특정 회사를 우대하지 않고 고객의 편의만 고려해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금융그룹이 지금처럼 끈끈한 협업 모델을 고수하면 고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아무리 기술을 따라간들 고객이 어떤 플랫폼을 선호할지는 뻔하다. 윤 회장이 내린 특명은 이 문턱을 넘어서란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앞으로는 '삼성 디지털프라자'가 아니라 '하이마트' 같은 역할을 맡는다고 보면 된다"며 "KB 외에도 신한·우리·하나·농협 등을 가리지 않고 고객 입장에서 조건이 제일 좋은 상품을 파는 완전한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 내에서는 이런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례로 국민카드는 얼마 전 KB증권에 앞서 삼성증권과 먼저 리브메이트 앱에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KB' 이름을 달았단 이유 하나만으로 계열사 상품을 추천해 우대한다면 KB금융이 플랫폼기업으로 거듭나는 일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가 남이가' 식 협업 체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전통 금융그룹이 빅테크에 맞서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까. 수십 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노하우를 토대로 금융 부문에서는 우위에 설 역량이 있다. 다만 이 역시 개별 금융그룹의 울타리를 넘어선 진정한 플랫폼을 꾸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역설적이지만 국민카드가 KB를 잊을수록 더 많은 고객이 금융이 필요할 때 KB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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