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23일 07: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3년 전 여름 M&A부로 배치 받고 한창 PE 운용역들에게 첫 인사를 하러 돌아다닐 때였다. 을지로 부근의 일식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하얗게 샌 머리를 꽤 길게 기르고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채 한 손에는 제로콜라를 들고 그가 나타났다. 낮은 목소리를 내는 말이 적은 중년 남성이었다.그와의 첫 대화는 여느 PE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는 내게 어떤 TV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지 첫 질문을 던졌다. 삼시세끼같은 ‘나영석 예능’이라고 답했다. 그냥 액자처럼 그 프로를 틀어두고 멍하니 본다고 말했다.
그는 TV를 액자처럼 본다는 말에 흥미를 보였다. 말을 다루는 기자들이라 표현이 신선하다고도 했다. 인사치레로 여기면서도 한 켠에서는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그의 칭찬에 우쭐했던 건 돌이켜보면 그를 여전히 예술가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 서동욱 모건스탠리PE 부대표. 그는 그때만 해도 나에게는 여전히 전람회의 서동욱이었다. 그는 전람회의 여러 곡을 직접 작사할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그를 만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꼭 약속자리가 아니더라도 회계법인 건물 로비에서, 광화문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업무에 매진하는 그를 만날 수록 전람회 서동욱이 아니라 모건스탠리PE 부대표 서동욱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는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올해도 그는 한 건의 투자를 마무리했다. 한 건의 M&A를 완료하기 위해 PE 운용역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다. 쇠약해진 그가 얼마나 노력하며 딜을 진행했을 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마지막까지 열정을 잃지 않았던 PE 운용역으로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봤다. 그의 부고에 모건스탠리PE 부대표 대신 있던 '전 전람회'라는 표현이 괜히 서운했던 이유다.
늘 자상하고 세심했던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다시 남긴다. 떠나간 그 곳에서 늘 평안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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