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2월 17일 07시00분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 찰스 도지슨의 필명이다. 교수로선 이렇다할 업적이 없었다. 강의는 지루했고 대단한 이론을 내놓지도 못했다. 과학에 대한 도지슨의 기여는 오히려 그가 쓴 문학작품에서 두드러진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온갖 수학적 상징과 비유로 가득차 있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설의 영감을 이 소설에서 얻어갔는데, 양자물리학계를 뒤흔든 ‘양자 체셔고양이’가 대표적이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 역시 이렇게 유래했다.
붉은 여왕 효과는 종의 멸종을 통찰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붉은 여왕의 세계. 종이 진화할 땐 다른 종과 주변환경도 움직이기 때문에 계속 경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만다는 이론을 설명한다. 지금 인공지능(AI)업계에서 전례없는 규모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네이버는 10여년 전부터 기술연구조직 네이버랩스를 분사하는 등 AI 기술에 공들여왔다. 2016년 개발자 회의에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인터넷은 국경이 없어서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AI 분야는 레드퀸의 경주를 하고 있다. 뛰어도 좀처럼 나아가기 어렵다. 오픈AI가 주도권을 잡긴 했지만, 지난해 앤트로픽의 클로드3이 인간 평균 아이큐인 100을 처음 넘기면서 강력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최근엔 딥시크의 급부상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변화가 너무 빨라 애플조차 끼어들 엄두를 못내는 처지다.
네이버는 국내 IT업계에서 연구개발에 가장 거금을 쓰는 회사로 꼽힌다. 2023년 한 해에만 2조원 가까이 쏟아부었다. 멈춘 적 없지만 글로벌 기업과 겨루겠다던 포부를 레이스에서 지켜내진 못했다. 최근 이해진 의장까지 복귀해 ‘소버린 AI’를 핵심 전략으로 삼은 배경으로 짐작된다.
소버린 AI란 해외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 언어와 인프라, 데이터를 활용한 기술을 뜻한다. 필요한 이유는 보안이나 주권 이슈를 포함해 더 복잡하지만, 쉽게 말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해외기업들의 침투가 느린 틈새시장을 네이버가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틈새가 영원히 안전할 수는 없다. 해외 빅테크들의 팽창은 비영어권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촘촘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앨리스를 붉은 여왕은 재촉한다. "이 자리에 멈추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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