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3월 06일 08시4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용일 현대해상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신사로 통한다. 항상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로 기자를 대하고 표현에는 진중함이 가득 차 있다. 업계가 마주한 고충을 이야기하면서도 낙관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빠뜨리지 않는다.2월27일 오전, 금융감독원장과 보험사 CEO들의 간담회 행사가 끝난 뒤 만난 조 부회장은 이전과 조금 달랐다.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는 그대로였지만 표현에는 날이 서 있었다. 협회 차원의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 개선 움직임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당혹감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 오후 조 부회장의 대표이사 사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강력한 표현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 느낌을 받았다. 경영 일선을 물러나기로 한 마당에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958년생의 조 부회장은 보험사 CEO들 가운데 최고 연장자다. 40년 가까이 현대해상에서 일하며 보험업을 얽매 온 제도나 규제의 답답함을 그 누구보다 많이 느꼈을 업계인이다. 그날 기자는 조 부회장이 마음 속에 쌓아 둔 답답함의 일면을 본 것만 같다.
지난해 현대해상은 역대 가장 많은 순이익 1조307억원을 거뒀음에도 결산배당을 실시하지 못했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제도로 인해 배당가능이익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이 제도로 인해 지난해 배당을 실시하지 못하게 된 상장 보험사들은 현대해상 이외에도 여럿 있다. 이에 양대 보험협회가 올해 과제 중 하나로 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을 내세웠다. 그러나 2024년 결산배당은 공표 시점의 한계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현대해상은 실적 신기록을 내고도 2001년부터 이어 온 23년 연속배당을 멈춰야 했다.
조 부회장은 "제도라는 것은 한 번 만들어지면 바뀌기가 어렵고 그것이 안착하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고 말했다. 어디 해약환급금준비금 뿐이겠는가. 그간 보험업계에 만연해 온 보수적이고 통제적인 문화가 이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쓴소리를 에둘러 남긴 것으로 들렸다.
이날 간담회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보험사 자본관리를 포함한 일부 규제나 제도를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로운 방안이 나오는 데는, 그리고 그것이 안착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조 부회장이 남긴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면 좋겠다. 떠나는 어른의 말이 그 힘을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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