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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와 롯데쇼핑 '90일의 단 꿈'

신수아 기자공개 2012-12-31 10:41:34

이 기사는 2012년 12월 31일 10: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석 달 전의 일이다. 재정난으로 애를 먹어 온 인천시가 재원 마련을 위해 롯데쇼핑과 인천종합터미널 매각을 위한 깜짝 투자약정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인천시와 유통거물의 만남에 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최소 6000억 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해 재정난을 해소하겠다는 인천시와 터미널 부지 개발의 핑크빛 전망을 그려낸 롯데쇼핑은 공정하고 기본원칙에 부합한 약정이라고 자평했다.

곧 이어 관심은 터미널 내에서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로 옮겨갔다. 경쟁업체 롯데가 터미널의 주인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상 향후 백화점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은 자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상도의를 거론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열 하루 뒤 신세계는 다툼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계생물)의 처분을 금지시켜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2017년과 2031년 두 기간에 걸쳐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는 신세계가 터미널 처분 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는 ‘임차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매각 계약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다.

이틀이 지나자 법원은 신속한 판결을 내렸다. 소명부족을 이유로 신세계 측이 보전하고자 하는 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인천시는 당연한 결과라며 해당 계약은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거듭 자신했다.

하루 뒤 인천시와 신세계 간 일이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나있던 롯데쇼핑은 투자약정의 효력을 확보하는 이행보증금을 인천시에 완납했다. 계약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열 사흘 후 신세계는 다시 부당하게 이뤄진 매매계약이 계속될 경우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속행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터미널 개발자 선정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을 뿐 더러 롯데쇼핑은 수의계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인천시는 하자가 없다며 당당했고 롯데쇼핑은 말을 아꼈다.

보름 후 열린 1차 심리는 신세계와 인천의 날선 공방으로 치열했다. 신세계는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입찰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신세계의 지위가 임차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터미널 기능 유지와 더불어 고가 매각 여부를 최우선에 두고 진행된 계약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점차 쟁점은 투자약정서 내용으로 옮겨 붙었다. 신세계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 적법한 매각이었다면 당시까지 비밀에 부쳐진 해당 약정서의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인천시는 비밀유지조항을 근거로 투자약정서 공개를 완강히 거부했다.

여드레 후 재판부는 결국 약정서 공개를 명했고 일주일 후 열린 2차 심리에서 문제의 약정서가 공개됐다.

임차인의 시비 걸기 쯤으로 비춰지던 신세계의 가처분 신청이 급물살을 탔다. 약정서에 비용보전조항이 포함 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양자간 본계약 체결 후 이해관계자들이 관련 소송 등을 이유로 롯데쇼핑의 개발 계획에 발이 묶인다면, 터미널 인수를 위해 롯데가 선(先)조달한 자금의 이자는 인천시가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최소 2017년까지 묶여있는 신세계의 임대차 계약을 감안할 때 개발 계획의 지연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인천시가 이자 비용을 부담한다면 사실상 감정가 이하로 매각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케 됐다. 자칫 국공유재산은 부동산 감정가 이상으로 매각해야 한다고 규정한 관련 법령을 훼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초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가 매각을 위해' 수의계약에 나섰다던 인천시 주장의 신뢰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달여가 지나서야 재판부의 판단이 섰다. 결과는 가처분 신청 ‘인용'. 인천시의 달콤한 꿈과 롯데쇼핑의 청사진은 ‘공공성과 공정성 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재판부의 판단 하에 전면 중단됐다.

애초 온갖 특혜 의혹에도 롯데와 수의계약을 강행했던 인천시는 '가장 높은 가격에 매각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었다. 신세계와도 마지막까지 매각 논의를 진행했으나 감정가 이상 매입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특혜는 없었다며 인천시가 스스로 강조해 온 ‘고가 매각' 주장이 도리어 자충수가 된 셈이다.

방관으로 일관한 롯데쇼핑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롯데가 불리한 여건에도 고가에 터미널 매입에 나선 배경에는 결국 '감춰진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천시와 신세계의 법정 공방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말을 아끼던 롯데쇼핑은 투자약정(MOU)은 '양해각서'라고 이례적으로 공시하는 등 조용히 부담을 덜어내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익'은 챙기되 '책임'은 덜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90일 간의 여정은 공공성과 공정성에 입각해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명제만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이번 사건에 대해 숱한 전망이 쏟아진다. 그러나 한번 달라붙은 특혜 꼬리표를 떼어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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