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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철, 오리온을 바꿀 수 있을까 [thebell note]

문병선 기자공개 2014-10-02 09:11:00

이 기사는 2014년 10월 01일 08: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야말로 숨가쁜 일정이다. 회장실을 폐지하고 오너의 최측근 인사를 전보조치하는 데서 그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 두 곳을 합병키로 했다. 불과 3개월만에 오리온그룹에서 일어난 일이다. 신세계 출신 허인철 부회장의 주도로 모든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너무 빠른게 아닌가 할 정도의 속도감인데,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화를 줄 속사정이 따로 있는지 먼저 의아함이 든다. 재계 한 관계자가 "담 회장 등 오너의 몸조심일 수 있다"며 "작년 횡령·배임 혐의 관련 선고 영향으로 이와 연관된 행적들을 지우려는 거 아닌가"라고 할 정도다.

오리온그룹은 유통업계에서 꽤 보수적인 업체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의미있는 성공신화를 써 왔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과를 내고 매각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해외진출'을 일찌감치 단행해 '초코파이'를 세계적 제품 반열에 올려 놓은, 저력있는 기업이 오리온이다.

그러나 변화 감각이 느린 보수적 기업이란 멍에는 늘 따라다닌 것도 사실이다. 국내 제과업체 대부분이 오리온과 비슷하다. 성과주의보다는 안정주의가 득세한다. 외부인사들의 '무덤'일 정도로 배타적 기업문화에는 제과사업의 특수성이 반영돼 있다. 신제품 출시와 매출 부진에 따른 제품 폐지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비용도 20억~30억 원대로 감내할 만하다. 그래서 웬만큼 입지를 구축한 제과업체들은 큰 변화를 원하지 않고 안정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오리온그룹의 체질개선 및 조직정비 작업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시선이 그룹 안팎에서 없는 게 아니다.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허 부회장에게 관심이 쏠린다. 그는 부임 직후 회장실을 폐지하고 부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조차 견제하기 쉽지 않았던 오너의 최측근 임원을 전보조치했다. 곧이어 그룹 매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법인들의 모회사격인 두 법인(오리온,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을 합병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합병으로 당장 그룹 오너인 이화경 부회장이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오게 됐고 오리온그룹 경영전략본부 출신 고위 재무통 인사들의 자리가 사라지게 됐다.

한 관계자는 그를 향해 "얼마나 오래가겠느냐"며 볼멘 소리를 한다. 다른 관계자는 "오리온은 쉬운 조직이 아니다. 외부 영입 인사들과 마찰이 과거에도 있었다"며 허 부회장의 한계를 꼬집기도 한다. 모두가 아직은 허 부회장 주도의 변화를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과연 허 부회장이 오리온에 안착할 지, 그리고 지금의 변화가 허 부회장의 생각대로 오리온의 체질을 바꾸어 놓을 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사실 오리온그룹은 지금 변할 수 있는 절호의 위기이자 기회를 맞고 있다. 급성장의 우상향 그래프는 차츰 평이해지는 단계에 와 있다. 매출은 답보 상태다. 올해 상반기 오리온 연결 매출액은 1조2187억 원으로 작년 상반기(1조2237억 원) 대비 0.41% 역성장했다. 지난 10여년간 보기 힘들었던 역성장이다. 초코파이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성장의 주역이 될 수 있을 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울러 오너 비리와 관련해 그룹 이미지는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다. 허 부회장에게 기대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오리온그룹 한 관계자는 "매우 비범한 인물"이라며 "다른 경영자가 해내지 못했던 책임을 맡고 있다"고 했다. 담 회장 입장에서도 횡령·배임 사건과 고액배당 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몸을 낮추고 있어 어느 때보다 허 부회장과 같은 뚝심있는 전략가가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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