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8월 10일 17: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멸종위기 근접종인 흰고래 ‘벨루가(Beluga Whale)'. 속삭이는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바다의 카나리아'로 불린다. 길들이기 쉽고, 지능도 높아 인간의 말과 행동을 곧잘 따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서식지는 찬 북극지방이다. 최근 개체수가 급격히 줄면서 쿼터제로 포획을 제한하고 있다.국내에는 모두 10마리가 있다. 롯데그룹은 이 가운데 3마리를 지난 2013년 5월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벨루가는 곧바로 롯데월드몰 수족관에 투입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1년 넘게 남의 집 신세를 졌다. 수족관 개장이 지연되면서 2014년 10월까지 무려 17개월을 강릉의 모 대학에서 머물렀다.
롯데그룹 수뇌부는 당시 이 작은 희귀 생물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주변에 민감한 벨루가가 수족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병을 앓거나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찬 북극지방에 익숙한 벨류가에게 한국의 뜨거운 여름은 치명적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연일 비난을 쏟아냈다. 롯데그룹은 부랴부랴 별동대를 꾸려 사육사와 수의사 등을 급파했다. 이들의 미션은 오로지 벨루가를 살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벨루가 구하기' 프로젝트는 1년 넘게 이어졌다.
벨루가는 이제 롯데월드몰 수족관 ‘스타 애니멀'로 꼽힌다. 해양 희귀생물 해룡과 국제보호종으로 연구목적 교류만 가능한 바다거북이 등도 벨루가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수족관 공사와 해양 생물 확보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됐다.
롯데그룹이 이처럼 수족관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브랜드 가치 때문이다.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결국 기업 경영에 순기능을 할 것으로 봤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늘 입버릇처럼 경영에 숫자 외에 외적 요인을 늘 중시했다. 이런 사업 철학은 오늘 롯데가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중국, 동남아,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반이 됐다.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타워를 짓는 것도 같은 이유다. 채산성을 이유로 롯데월드타워 사업을 반대하던 신동빈 회장도 훗날 아버지의 뜻이 옳았다고 회고 했다. 잇단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을 위해 해외를 누비던 신 회장은 '글로벌 롯데'를 외쳤다. 그는 삼성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됐듯이 밖에서 롯데의 브랜드를 키우겠다고 했다.
골육상쟁으로 불리는 이번 경영권 분쟁은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렸다. 롯데의 어지간한 가족사와 지배구조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이제는 롯데 껌을 팔던 골목길 슈퍼마켓 사장도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의 일본 성(시게미쓰)과 이름, 가족사 등을 줄줄이 외운다.
정체성 논란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롯데가 일본기업이었다며 반 롯데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다수의 해외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삐걱대고 있다. 롯데의 브랜드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는 롯데 임직원들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겠지만 아버지와 아들 모두는 스스로를 무너뜨린 패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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