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동상이목(同想異目)]신격호·故이맹희 '명예회장'의 명예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부동산팀장)공개 2015-08-24 09:15:00

이 기사는 2015년 08월 21일 15: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 사람은 죽기전에, 다른 한 사람은 죽은 뒤에야 '명예회장'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둘 다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한 사람은 '노욕이 불러온 비극', 다른 한 사람은 '비운의 황태자의 저승 직함' 정도로 불릴만 하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신격호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아들과 힘대결을 벌이다가 사실상 유폐됐고, 이맹희는 사후에 아들이 상징적이나마 경영으로 불러 들였다.

'명예'란 말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일컫는다. 이 단어가 지위와 연결이 될 때는 '그 공로나 권위를 높이 기리어 특별히 수여하는 칭호'를 의미한다. 명예회원, 명예총재, 명예학위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명예회장' 역시 기본적으로 명예롭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그 타이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기업에서 명예회장은 일종의 조선시대 '상왕' 정도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이다. 회장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경영을 직접 진두지휘 하기 어려울때 자식 또는 전문경영인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반걸음 뒤로 물러나는 형태다. 이 경우 경영에 일일이 간섭을 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반대로 후계자가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영향력은 행사하는 셈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런 일반적인 케이스와 동떨어져 있다. 전혀 명예스럽지 않은 칭호다. 그의 인생 말로는 고통스럽게 흐르고 있다. 롯데측 설명대로 신체·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정신적으로나마 덜 고통스러울 수 있고, 아직도 모든게 멀쩡하다면 참담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일본땅에서 맨 손으로 시작해 연 매출 80조원이 넘는 재계 5위의 '롯데'라는 대기업을 일궈낸 그의 인생역정을 감안할 때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이 모든 고통을 자초했다.

남들은 살아있기 조차 어려운 고령의 나이에도 후계구도 마련은 커녕 '손가락' 하나로 임원을 임명하고 자르는 전권을 행사 했으니 '노욕'이란 말 외에는 달리 더 설명할 길이 없다. 그의 노욕은 결과적으로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아버지를 격리시키는 '패륜' 적 행태를 보이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롯데 일가는 탐욕에 의해 서로 물고 뜯은 가문이라는 불명예를 한동안 안고 가야 한다. 그 뿐인가. 10만명에 달하는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졸지에 일본기업 종업원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심, 푸르밀, 동화면세점 등 형제들이 이끄는 기업들은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하며 앞다퉈 '그와 친하지 않다'고 떠들고 있다.

고 이맹희 명예회장은 먼 이국 땅에서 유서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찌감치 아버지에 의해서 경쟁에서 밀려나 패자의 길을 걸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그에게 재산은 커녕 경기도 용인 선영의 땅 한 평 조차도 남겨주지 않았다. 병든 장남(이재현 CJ 회장)은 빈소조차 지키지 못하고 조용히 시신 안치실을 찾아 눈물을 흘려야 했다.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그룹의 미래에 대한 염려, 이제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이채욱 CJ 대표이사가 영결식에서 낭독한 조사(弔辭)의 일부다. CJ그룹이 사후에 그에게 '명예회장'의 칭호를 부여한 이유 역시 이 문구에 함축되어 있다. 삼성가의 장자로 태어나 한때 아버지를 보필하며 회사를 일궜지만 결국 '비운의 황태자' 길을 걸어야 했던 그가 '낭인(浪人)'이 아닌 그룹과 가족의 일원임을 재확인시켜 준 셈이다.

신격호, 고 이맹희 이 두사람의 '명예회장' 타이틀은 그 과정과 최종적인 의미에 상관 없이 불행한 가정사, 기업 역사의 산물이다. '가족경영'이 고착화된 기업들은 창업주, 2세, 3~4세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잡음이 생기면 '명예'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재계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겪었던 곳이야 다시한번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고, 벌써부터 여진이 느껴지는 곳들 역시 강 건너 불구경 할때가 아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