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9월 23일 07: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앞두고 세간의 관심은 엉뚱하게도 그의 '한국어 실력'에 쏠렸다. 안그래도 어눌한 일본식 억양의 한국말이 공개석상에서 재연될 경우 롯데그룹의 국적논란 내지는 일각의 반 롯데정서를 다시 부추기는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오죽하면 신 회장이 국감을 목전에 두고 한국말 연습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을까. 롯데측에 확인해보니 내부적으로 한국말 발음에 신경이 쓰인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메인은 아니라는 답이 돌아 왔다. 순환출자 논란을 비롯한 지배구조 문제, 골목상권 침해, 경영권 분쟁 등 핵심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과 롯데의 이같은 걱정은 '기우'였다.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공감합니다, 개선하겠습니다' 등의 핵심 멘트 몇개와 공손한 자세로 모든 질문을 커버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의 국감 출석은 10대그룹 총수 중에서는 처음이다. 다시 말해 적절한 명분을 만들어 국감에 불참해 야단 좀 맞고, 국회법에 따른 처벌만 받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미 상당수 다른 그룹 총수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를 굳이 국감에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다.
하지만 롯데는 정공법을 택했다. 경영권 분쟁 와중에 일파만파로 번진 '반 롯데정서' 에 대해 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해명하고 다짐을 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생뚱맞은 한국말 발음 논란에서 볼 수 있듯히 자칫 말 한마디 실수했다가 예상치 못한 후유증을 겪게 될 우려도 있었지만 '국감 불참'이 가져올 후환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롯데의 이같은 정면돌파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언론이나 주변의 평가도 대체로 '신 회장이 선방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잘 알려진대로 롯데는 소통 부재, 베일에 싸인 기업문화, 보수적 이미지 등으로 시장에 미운털이 박힌 축에 속한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오히려 강하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오너가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훨씬 능숙해 국내 여론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지적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같은 외부 정서 속에서 형제, 부자간 벌어진 골육상쟁의 경영권 다툼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은 결과적으로 오너 자체의 '정권교체' 뿐만 아니라 경영진과 기업문화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정보의 오픈, 솔직함, 소통'의 노력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물론 아직까지는 반강제적이다.
신 회장 역시 이번 국감을 통해 자세를 낮추면서 솔직하고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예봉을 피해나갔다. 아직은 약간 서툰 한국말과 중간중간 해맑았던 얼굴 표정은 의원들의 황당한 질문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이끌어 냈다. 신 회장의 대중적 인지도 역시 한껏 올라갔다. 한마디로 신 회장과 롯데 모두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전화위복의 기회가 전적으로 롯데의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것인지 묻거나 자기 지역구 현안 챙기기에 바쁜 수준 낮은 의원들의 질문과, 한국말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 일각의 말초적 시선들도 핵심 이슈를 희석시키는데 크게 한 몫을 했다. 국감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다른 재벌 총수들도 굳이 출석을 기피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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