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9월 30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느닷없이 제기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통합론'은 이제 불씨가 꺼지는 듯하다. 금융공기업 통폐합은 주무부처와 노조 문제가 엮여있어 정권 초에나 꺼내들 이슈다. 임기 중반에 이른 지금은 공론화하기 어려운 만큼 예상된 바다.그렇다보니 당국과 은행권에선 '이 회장이 갑자기 왜 얘기를 꺼냈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많다. "20년 이내 산은 전체수익의 절반 이상을 글로벌에서 올리고 이걸로 국내 산업을 지원하는 선순환 체제를 꿈꾸고 있다"는 언급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막연하게 해석할 뿐이다.
이 발언이 나온 시기가 이 회장이 영국 런던 출장을 다녀온 직후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최근 런던 주재 한국계 은행들을 직접 둘러볼 기회가 생겼는데 여기서 약간의 실마리가 잡혔다.
런던 IB시장에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는 국내 은행 가운데 산은의 위상은 단연 돋보였다. 만나는 런던 주재원마다 산은을 '주포'로 꼽았다. 인원이 15~25명 남짓한 시중은행 지점들이 신디케이션 딜에 참여하는 수준이라면 산은은 40명이 넘는 직원들을 보유하며 딜 주선도 하고 있다. 당연히 런던지점 자산규모는 3조~4조원으로 2조원 정도인 시중은행들을 웃돈다.
다만 이런 활약이 돋보이는 것도 한국계 은행에 한해서다. 런던 금융시장의 심장부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옆에 자기 건물을 사서 오성홍기를 자랑스레 걸고 있는 중국은행, 일본산업은행과 합병 후 런던 인력만 1000여명인 미즈호은행과는 비교가 안 된다.
런던 뿐만 아니라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과 글로벌 역량 자체가 규모적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수은과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해외 경쟁력 제고를 어느 정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림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은행들이 런던에서 진행한 IB 딜 사례를 살펴보면 수은 보증이 들어간 건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는데 이런 ECA(공적수출신용기관) 기능과 산은의 개발금융 역량을 합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 회장이 왜 통합론을 갑작스레 꺼내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국내에선 정치적 이슈와 자리다툼 때문에 섣불리 건들진 못했지만 한 번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얘기다. 다만 관련부처와 협의 없이 공개적으로 던질 일는 아니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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