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구조조정 포트폴리오 점검]HMM 원매자 찾기…대기업은 고사, 중견그룹은 불안⑫포스코·현대차 등 접촉했지만 성과 없어…SM 등 중견그룹 관심 높지만 자금여력 의문
고설봉 기자공개 2022-09-01 07:10:29
[편집자주]
KDB산업은행은 한국 산업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기업금융부문과 구조조정본부로 대변되는 산은의 기업금융 시스템은 경제 상황과 기업 여건 등 변화에 맞춰 모습을 달리해 왔다. 최근 몇 년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이란 숙제를 푸는데 진땀을 빼고 있다. 성공한 구조조정도 있었지만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기업들도 많다. 더벨은 산은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을 살펴보고 현재 남아 있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을 집중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29일 15: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DB산업은행은 HMM 출구전략 모색에 애를 먹고 있다. 산은이 HMM 매각을 희망하는 계열 대기업은 있지만 해당 기업들은 HMM 인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반대로 HMM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도 여럿 있지만 이들에 대해선 산은이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최근 HMM의 몸값이 뛰어 오르면서 변수는 더 커졌다.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중견 해운그룹사들의 자금 여력에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산은은 ‘승자의 저주’를 우려해 이들 해운 그룹사들의 구애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계열 대기업에 물밑 접촉…성과 없이 흐른 2년
산은은 2020년 HMM 정상화 물꼬를 텃을 때부터 민영화를 위한 물밑 접촉을 시도해왔다. 주로 계열 대기업들에 러브콜을 보내며 HMM 민영화 의지를 다졌다. 당시 HMM 정상화와 글로벌 해운경기 회복이 맞물려 기대감이 커졌다.
산은이 계열 대기업을 선호한 것은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철학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발표할 때도 “재벌체제가 아니면 대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빅딜’을 강행했다.
실제 2020년 당시 산은은 구조조정본부 차원에서 다양한 원매자들을 분석하고 매각 의사 등을 직간접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HMM의 몸값과 이에 따른 산은의 채권 회수 등 개괄적인 계획 등도 나왔었다는 후문이다.
산은이 접촉했던 원매자 그룹은 대부분 계열 대기업이었다. 우선 포스코그룹의 경우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어 HMM 원매자로 거론됐다. 철강 제련 기술을 활용해 리튬 등 원석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또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를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과 HMM의 사업을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제련 기술을 활용한 사업 다각화의 경우 벌크선사가 사업 결합시 더 유리하다. 완제품 운송에 특화된 컨테이너선사는 사실상 대규모 원재료 화물의 해상운송에는 맞지 않다. HMM은 드라이벌크 운송권을 과거에 매각했다. 또 포스코인터내셔널과 HMM의 사업 결합도 고객 다변화 측면에선 시너지가 제한적이란 평가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도 주요 원매자로 거론됐다. HMM의 뿌리가 옛 현대그룹인 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옛 현대그룹 재건이란 측면에서 명분도 있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해운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해운업 확장이란 측면에서도 시너지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에서 생산한 완선차 해상 및 육상 운송을 중심으로 사세를 키웠다. 이후 벌크선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꾀하며 덩치를 키웠다. HMM을 인수할 경우 컨테이너사업도 추가해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완성차 생산체계와 부품 SCM(공급망관리)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HMM의 역할도 기대된다. 현대모비스 및 주요 협력사들이 공급하는 자동차 부품을 글로벌 생산기지에 공급하는 주요 수단은 컨테이너선이다. 이런 차원에서 HMM 인수시 시너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미래차 및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투자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HMM 인수 의사는 전혀 없었다. 미래차 시장에 수십조 단위 투자를 하기 위해 서울 삼성동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계획도 원점 재검토 후 비용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정도로 투자 재원을 미래차에 집중하고 있다.
산은이 과거 HMM 매각을 위한 원매자 구성에 실패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산은이 주요 원매자로 앞선 계열 대기업을 꼽은 것은 단순 민영화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산은은 HMM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매각가가 높아졌고, 그 매각가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원매자를 원했다. '승자의 저주' 예방 차원에서다.
더불어 산은은 HMM 매각과 산은의 채권 회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사전에 스스로 원매자를 국한했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공적 영역에서 컨트롤이 가능하는 판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옛 현대가 재건이란 점에서 협상이 다소 쉬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에 러브콜 보내는 중견 해운그룹사
현재 HMM 매각에서 또 다른 변수는 해외 기업과 사모펀드의 입찰 제한이다. HMM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매자 풀을 국내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으로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현재 HMM 인수 의지를 높이고 있는 곳은 해운업을 영위하는 중견 해운그룹사들이다. 이들은 어찌보면 산은이 그동안 구조조정 후 민영화 과정에서 원칙으로 제시했던 ‘빅딜’에 적합한 후보들이다. 또 참여가 제한된 해외기업 및 사모펀드와도 차별성을 갖는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우오현 회장이 이끄는 SM그룹이다. SM그룹은 HMM과 더불어 국적 원양선사를 운영하는 국내 재계 34위 기업집단이다. 옛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인수해 출범한 SM상선은 현재 미주노선과 아주노선에서 원양선사로 성장했다. 또 그룹 내 대한해운은 국내 3대 벌크선사로 입지를 굳혔다.
SM그룹의 경우 건설부문으로 성장한 뒤 해운부문을 제2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원양 컨테이너선사와 벌크선사를 보유해 해운업 포트폴리오도 갖춘 만큼 HMM 인수로 국내 1등 해운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이다. 이미 HMM 지분 5.52%를 확보해 3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SM그룹은 자금력 면에서 HMM 인수 의지를 드러낸 후보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한 대기업집단 순위 3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8위에서 4단계 더 상승했다. SM그룹과 비슷한 체급의 기업집단은 영풍·셀트리온·교보생명·호반건설·넷마블 그룹 등이다.
SM그룹은 올해 기준 자산총액 13조6796억원, 자본총액 6조8298억원으로 부채비율 100.29%를 기록 중이다. 차입금액은 3조9176억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 7조2593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 6475억원, 순이익 705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HMM 잠재 원매자로 거론되는 또 다른 곳은 장금그룹이다. 장금상선을 중심으로 30여개 계열사 대부분이 해운산업 관련 업체로 구성돼 있다. 해운산업 재건 프로젝트 이후 11개 군소 해운사를 흡수합병(M&A) 하며 덩치를 불렸다. 올해 재계 순위 50위로 성장했다. 이랜드·태광·금호석유화학·동원·한라 그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장금그룹도 자금 동원력 측면에서 내실이 있다. 올해 기준 자산총액 9조3340억원, 자본총액 3조5965억원, 부채비율 159.53%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매출 4조7518억원, 영업이익 1조3223억원, 순이익 1조7620억원을 각각 달성했다.
SM그룹이나 장금그룹 모두 내실 있는 경영을 이어가는 중견그룹이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하면 현금 동원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산은 입장에선 인수 여력에 의문부호를 그리며 또 다른 대안을 먼저 찾자는 분위기다.
산은 구조조정 관계자는 “HMM 매각에 대한 산은의 뚜렷한 입장은 아직 없지만 민영화가 돼야 한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며 “원매자 풀이 제한적이지만 막상 딜이 시작되면 예상치 못한 인수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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