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메리츠의 비밀]수익창출 일등공신 부동산금융 '양날의 검'⑦김용범·최희문 주축 '10년의 굴기'…업황 침체에 '익스포저 과도' 지적도
이지혜 기자공개 2023-02-02 07:20:10
[편집자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이례적인 메리츠의 행보는 언제 어디서나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 평가도 호불호가 갈린다. 메리츠의 혁신을 평가절하하는 경쟁 업체들도 물론 있다. 뛰어난 경영수완과 각종 성장 지표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승계를 포기한 과감한 지배구조 개편 승부수까지 띄웠다. 메리츠의 지배구조와 사업 전략, 현안을 세밀히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1월 02일 16: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의 크기는 자본이 아니라 생각에 달렸다. 야수성은 원대하고 강렬한 욕망이자 건강한 분노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2019년 카이스트에서 열린 금융권 CEO초청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부동산금융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원대한 생각과 야수성이 발현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최희문 부회장과 함께 메리츠증권을 부동산PF 사업의 강자로 우뚝 세운 이후 메리츠화재해상보험까지 부동산금융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메리츠금융그룹은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했다. 계열사와 끈끈한 협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양질의 딜을 모조리 흡수했다. 덕분에 메리츠금융그룹은 업계 최상위권의 수익성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지금, 메리츠금융그룹의 부동산금융사업은 시험대에 올랐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맞닥뜨린 탓이다. 현재 지주를 비롯해 메리츠금융그룹의 총 부동산 넷(net) 익스포저는 30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다. 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다. 수익창출의 일등공신이었던 부동산금융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확대 ‘계속’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기준 메리츠금융그룹의 부동산 넷 익스포저(Net Exposure)가 29조1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넷 익스포저는 부동산 총 익스포저에서 회수가능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의미한다.
메리츠금융그룹의 부동산 넷 익스포저는 지난해 말과 비교해 약 4조원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말 메리츠금융그룹의 넷 익스포저는 25조7266억원이었지만 불과 9개월 만에 13.1% 불어났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을 중심으로 부동산 넷 익스포저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넷 익스포저를 꾸준히 감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반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은 증권의 빈 자리를 메우며 부동산금융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PF대출도 상당한 것으로 추산됐다. 올 3분기 말 기준 그룹의 PF대출 넷 익스포저는 20조7000억원이다. 이는 연결자본의 373%에 해당한다.
메리츠금융그룹의 부동산 넷 익스포저 규모는 업계 최상위권인 것으로 파악된다. 메리츠화재는 대출채권 가운데 20% 이상이 PF대출채권으로 구성됐다. 이는 손해보험사 중 가장 많은 많은 수치다.
메리츠증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동산PF 사업 비중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우발부채가 3분기 말 5조원을 넘었는데 이는 증권업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다.
메리츠캐피탈의 부동산 익스포저도 적지 않다. 메리츠캐피탈의 기업금융부문 부동산PF와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2조7000억원으로 영업자산 내 비중이 크다.
◇부동산금융 ‘10년의 굴기’…김용범·최희문 시너지 ‘극대화’
메리츠금융그룹에게 있어서 부동산금융은 실적의 견인차로 여겨졌다. 증권-화재-캐피탈이 탄탄한 공조체계를 이룬 덕분에 대규모 딜을 수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양질의 딜이 메리츠금융그룹에 몰리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한국신용평가는 “메리츠증권이 부동산금융 영업을 진행하면 화재와 캐피탈이 소화하는 구조”며 “강력한 성과보상체계를 바탕으로 우수한 인력을 영입했고 대규모 프로젝트 소화능력을 갖춘 덕분에 상대적으로 양질의 질을 우선 수임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부동산금융을 성장동력으로 삼은 데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김용범 부회장이다. 현재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 부회장은 국내 채권 운용 1세대로 1989년 대한생명 증권부 투자분석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화재 펀드운용부장, 삼성투자신탁운용의 채권운용CIO을 거쳐 삼성증권의 채권사업부를 이끌다가 2011년 메리츠증권(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의 CFO로 자리를 옮겼다.
김 부회장은 부동산금융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이에 따라 2012년 5월 영입된 최희문 부회장과 함께 메리츠증권의 각자 대표를 맡아 부동산금융을 집중육성했다. 김 부회장이 채권운용 전문가였듯 최 부회장 역시 파생상품의 전문가로 불렸지만 문제는 없었다. 두 부회장은 강력한 성과주의와 업계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뜻을 모으면서 메리츠증권을 부동산금융의 강자로 도약시켰다.
김 부회장이 메리츠화재로 자리를 옮기면서 계열사간 공조체계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김 부회장은 2015년 메리츠화재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운용자산 내 부동산PF 비중을 빠르게 확대했다. 2015년 메리츠화재의 PF대출잔액은 8500억여원이었지만 2022년 상반기 말 국내 PF대출은 6조6000억여원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우려도 커져
그러나 메리츠금융그룹의 부동산금융사업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동산금융을 중심으로 성장한 만큼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메리츠금융그룹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지적을 가장 먼저 반영한 곳이 메리츠증권이다. 2019년 금융당국이 부동산PF 규제를 강화한 이후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관련 투자자산을 만기까지 보유하는 대신 셀다운에 속도를 내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에 따라 2019년 말까지만 해도 11조원을 넘었던 부동산 넷 익스포저가 올 상반기 말 6조1814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증권업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의 부동산 익스포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과도한 부동산 익스포저 집중은 신용위험 관리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증권, 화재, 캐피탈 등 계열 3사가 공동으로 취급한 부동산금융 딜이 많아 대형 신용사건이 발생하면 그 영향력이 계열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벌써 부동산금융 관련 지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메리츠화재는 부동산PF대출에서 연체채권이 발생해 대출채권 연체율이 1.45%로 상승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출채권 연체율이 연간 0.0~0.1%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크게 높아졌다. 메리츠캐피탈의 요주의이하자산비율도 3분기 말 별도기준 3.6%로 업계 평균 대비 높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그룹 계열사 전체적으로 부동산 관련 여신 집중도가 높다”며 “일부 대체투자 관련 자산의 경우 동일차주에 대한 금융그룹의 고액 익스포저가 있어, 특정 차주 부실화에 따른 동반 부실 위험도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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