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자율주행]현대차가 주목한 '커넥티드카·로봇', 자율주행과 끈끈한 연결고리③로봇 개와 입장하고·운전자의 '완전 자유' 꿈꾼 정 회장, 자율주행 기술 시너지
허인혜 기자공개 2023-04-04 07:38:08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3월 31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3년, 정 회장은 한 유명한 로봇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 일본 혼다의 휴머노이드 '아시모'다. 당시 사장이던 정 회장과 아시모의 조우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그때만해도 현대차그룹과 로봇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정 회장이 대외적으로 로봇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건 2010년대 이후부터다. 현대자동차그룹관 준공식에 로봇을 전시하더니 로봇 관련 공학자를 사내 강연에 초청했고, 연구소에서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은 직접 입어보며 박수를 쳤다.
정 회장은 20년 뒤 한해 기술 성과를 공개하는 가장 큰 장인 CES에서 로봇 개 '스팟'과 함께 입장했다. 정 회장이 지금 '로봇에 꽂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속사정을 보면 로봇을 넘어 자율주행 기술 집중도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스팟은 사실 개보다는 염소가 모델이다. 산악지대까지 자유롭게 누비는 염소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의 개입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알아서 걷고 짐을 옮기며 위험지대를 순찰한다. 현대차그룹이 완성차로 구현하고 싶은 자율주행 기술 레벨5 수준을 먼저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로봇 강아지가 곧 자율주행 기술의 첨병이라고 본다면 정 회장의 스팟 사랑은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정 회장이 최근 꽂힌 키워드는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기술의 현재를 보여준다. 자율주행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정 회장이 신년사 등을 빌려 제시한 키워드는 커넥티비티와 로보틱스다.
◇'집 안에서 시동걸고 목적지에선 자동 주차' 실현하는 커넥티비티
정 회장이 꿈꾸는 자율주행은 말 그대로 운전자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수준까지다. 정 회장이 해외투어에 바빴던 2010년대 중반부터 드러냈던 표어도 '자유로운 이동 생활(Mobility Freedom)'이다. 정 회장은 모든 제약과 제한이 없는 이동을 꿈꿨다.
구체화된 목표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다. 통상 출퇴근 거리나 통학시간을 가리키지만 완성차 업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집 문을 여는 순간부터 목적지 도착까지 완성차의 경험으로 꽉 채운다는 뜻에서 도어 투 도어라는 말을 활용한다.
현대차그룹에게 자율주행 기술이란 차 문을 열기 전부터 차 문을 닫은 후까지를 포괄한다. 차를 부르면 집앞에 알아서 오고, 운전대에서 자유로워진 탑승객은 미처 마치지 못한 외출 준비를 차 안에서 끝낸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탑승객을 내려준 차가 알아서 주차까지 마무리한다. 도어 투 도어가 완성되면 완성차는 이동수단이라기보다 집과 같은 '생활공간'의 확장이 될 것으로 정 회장은 내다봤다.
이런 형태의 자율주행 기술이 가능하려면 운전자와 집, 차를 연결해주는 커넥티비티 기술이 필수다. 현대차의 커넥티드카 기술은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자체 운영체제를 구축할 만큼 성장했다. 2015년부터 엔비디아와 맞손을 잡고 개발한 엔비디아 드라이브는 제네시스 GV80, G80에 탑재돼 있다. 차세대 커넥티드 카 운영 체제(ccOS)는 지난해부터 현대차의 모든 신차에 적용되고 있다.
ccOS의 핵심은 판단력이다. 차량과 주변 인프라를 연결해 최적의 교통 상황을 지원하고 운전자의 심기를 파악한다. 자동차의 안전도 커넥티드 카 기술이 책임진다. 항상 온라인 상태이니 현재 인터넷으로 구현 가능한 기술은 차에서도 가능하다. 예컨대 차에 말을 걸어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불러오거나 차량을 원격제어할 수 있다.
정 회장이 2016년 미국 통신업체 시스코를 시작으로 해외사들과 연결고리를 강화하며 커넥티드 카 기술에 힘을 실었다. 2017년에는 CES에서 즉석 만남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 회장이 엔비디아의 부스를 찾아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회동했고 이날 나눈 인공지능(AI) 기술 관련 대화가 5년 뒤인 지금 기술로 실현됐다.
◇'자율주행 10년을 앞당긴' 정의선의 로봇 자신감
정 회장이 '꽂힌' 또 하나는 로봇이다. 정 회장은 2019년 임직원과의 대화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의 사업 비중이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 30%, 로봇 20%로 재편될 거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그룹이니 차와 모빌리티 비중은 당연하지만 로봇 비중이 예상 밖으로 높았다.
회장님의 애정에 로봇 기술 보폭이 커졌다. 정 회장은 2021년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라는 한 수를 던졌다. 정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대규모 인수 합병(M&A)이었다.
이 합병은 현대차그룹의 로봇기술을 단숨에 글로벌 톱티어 자리까지 올려놨다. 인수 당시 로버트 플레이터 CEO가 '현대차의 10년을 앞당긴 투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1조원을 투입해 지분 80%를 사들였는데 현대차가 30%, 현대모비스가 20%, 현대글로비스가 10% 등이었다.
특히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의 20%를 정 회장이 인수할 만큼 투자에 자신감이 컸다. 사비로 약 2400억원이 든 통큰 투자였다. 정 회장은 인수 전후로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실사하고 전 주인이자 여전히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20%를 들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면담했다.
로보틱스랩도 정 회장의 역점 부문이다. 2018년 팀제로 신설했다가 2019년 연구실인 랩으로 승격시켰다.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직속 부서인 전략기술본부 아래에 로보틱스랩을 뒀다.
로보틱스랩은 물류와 고객 응대 서비스 로봇 등으로 개발 범위를 넓혔다. 항목별로 보면 웨어러블과 서비스, 모빌리티 등이다. 모빌리티를 빼면 선뜻 자율주행차와 로봇의 상관관계가 읽히지 않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율주행은 로봇 기술 없이 구현될 수 없다.
카메라와 레이더로 인지하고 행동으로 구현하는 게 로봇 기술의 핵심인데 자율주행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로봇의 고도화 정보처리와 제어 기술도 자율주행에 꼭 필요하다. 플레이터 CEO도 블룸버그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과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 기술의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올해 현대차그룹이 서울 모빌리티쇼에 들고 나온 로봇은 전기차 자동 충전 로봇(ACR)과 배송 로봇,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와 스팟 등이다.
ACR은 전기차의 배고플 걱정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배송 로봇은 4개의 PnD(Plug and Drive) 모듈과 센서 기반의 자율이동 기술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정 회장이 꽂힌 기술이 현대차와 기아를 자유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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