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자율주행]늦깎이에서 글로벌 3위 만든 '과학 덕후'④자율주행 레벨3 상용화 앞뒀다…최고 시속은 '선배' 벤츠 제쳐
허인혜 기자공개 2023-04-06 07:34:08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3일 16: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운전자가 없이도 돌아다니며 자가 수리가 가능한 차.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한 현대의 차와 같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이런 차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영화 '크리스틴'에서는 차가 알아서 음악을 틀거나 목표물을 쫓아가는 장면을 공포의 포인트로 삼았다. 악령이 깃들지 않고서야 차가 혼자 움직일리 만무하다고 생각해서다.그보다 20년 뒤에 나온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아이, 로봇' 등은 한 단계 진화했다. 자율주행차를 말도 안되는 스릴러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공상과학이라고는 봤다. 영화 장르부터가 SF다. 또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크리스틴과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공포물이나 SF물이 아닌 다큐멘터리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사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차 기술도 초기에는 공포물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외국산 차들이 자율주행차로 도로를 누빌 때 겨우 속도와 방향을 보조했다. 2010년대에야 기술력은 SF영화로 넘어왔고, 이제는 다큐멘터리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차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레벨3 기술이 올해는 상용화될 예정이라서다. 그 배경에는 소문난 '과학 덕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
◇소문난 '과학 덕후' 정의선, 기술력 배우려면 명품 시계도 탐방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첫 단계인 자율주행 레벨3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 없어 최전방의 신기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2015년부터 이미 일부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한 상태였다. 이때 현대차그룹의 기술력은 조향이나 속도 가감속 등 보조 기능에 그치는 레벨2, 그것도 일부만 파악한 상태였다.
그보다 앞선 2000~2010년대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도요타 등이 자율주행 기술 일부 구현과 상용화에 성공했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처음으로 세운 상황이었다.
그 뒤로는 정 회장이 글로벌 스타트업과 IT기업을 찾아다니며 발로 뛰었다. 미국 피츠버그 일대의 스타트업을 비롯해 구글과 시스코, 모빌아이와 앱티브 등이 이 시기 만난 협업사들이다.
정 회장 특유의 '과학 덕후' 기질이 한 몫을 했다는 평가다. 정 회장의 과학 사랑은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다. 미래차 기술에 도움이 된다면 명품 시계 공장까지 찾았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2013년 임직원 20여명을 파견해 스위스 파텍필립과 피아제 본사 탐방을 지시했다. 프리미엄 시계가 현대과학의 정수라고 보고 정교한 기술력을 체험하고 오라는 취지였다.
정 회장의 뜀박질은 '레벨3'의 결실을 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말부터 레벨3 기술을 탑재한 신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제네시스와 기아의 EV 시리즈를 통해서다.
◇'벤츠 비켜' 늦었지만 제대로 낸 레벨3 자율주행차
현대차그룹의 레벨3 자율주행차는 본래 상반기께 출시를 예고했지만 한 차례 미뤄졌다. 늦은 걸음에 또 한번 일정이 밀렸으니 김이 샐법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늦었지만 제대로 준비해 경쟁자 레벨3 차들에 기능이 앞선다.
기아 EV9 GT라인에 도입되는 레벨3 기술은 하이웨이 드라이빙 파일럿(HDP·Highway Driving Pilot)으로 불린다. 고속도로 등에서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도 차가 알아서 앞차와의 안전거리, 차로 등을유지한다. 운전자의 개입이 없이도 주행한다는 점에서 진짜 자율주행의 시발점으로 본다. 라이다와 레이더, 센서, 정밀지도와 통합 제어 시스템 등이 합쳐진 기술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고 시속 80km를 자신했다. 제네시스의 연식변경 모델 G90에도 같은 속도를 적용한다. 그 이상의 속도를 구현할 기술은 개발했지만 국토교통부 등의 승인 문제로 속도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쟁자이자 선배였던 벤츠의 레벨3 시범 운전 차량의 최고 시속이 60km다. 최대 64km까지 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부터 자율주행을 연구해온 도요타는 지난해 출시된 신차부터 레벨2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레벨3 기술 상용화에 성공하면 벤츠와 혼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최첨단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한다는 의미가 크다. 제네시스는 정의선 회장의 경영 시험대로 불릴 만큼 정 회장에게는 특별한 브랜드다.
정 회장이 찾은 해답지는 자율주행 기술의 초기 단계인 고속도로 주행지원이었다. 제네시스의 브랜드로서 첫 출발인 EQ900에 탑재해 제네시스의 첫 흥행을 이끌었다. EQ900의 자율주행 기술로 성공한 정 회장이 신차 제네시스로 '데자뷰'를 노린 셈이다.
◇2006년 MS 두드린 정 회장, SW에 미래 걸었다
늦깎이였던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차 기술 선두에 선 비결은 대대적인 소프트웨어(SW) 투자다. 2006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할 만큼 SW부문에 눈이 밝혔다. 당시 사장이던 정 회장이 빌게이츠 당시 MS회장을 만나 직접 전략적 제휴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차량IT혁신센터를 설립하기로 하고 현대차와 기아에서만 1억6600만달러를 투자했다.
2010년대에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SW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도요타의 SNS 개발을 들여다보는 등이다. 이때부터는 정 회장이 발굴한 기업들과의 협업도 활성화됐다. 시스코, 모빌아이, 앱티브 등이다.
앞으로도 조단위 투자가 예정돼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소프트웨어 기술력 강화에 2030년까지 1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미래도 소프트웨어에 맡겼다. 정 회장은 "SDV 관련 기술 강화에 미래차 성패가 달렸다"고 표현했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차가 되면 무선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 현대차그룹이 구현하는 자율주행 신기술이 무선으로 자동 업데이트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SW 개발은 자율주행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설립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의 인력 구심점이 자율주행 자회사 포티투닷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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