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V 리포트]여천NCC는 '아름다운 결별'을 할 수 있을까⑨예견됐던 갈등...가치 다른 4개 사업장 분배에 시간 걸릴 듯
조은아 기자공개 2023-04-10 07:40:56
[편집자주]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들의 만남 소식도, 이별 소식도 부쩍 늘었다.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경영환경도 빠르게 변하면서 합작법인(조인트벤처·JV)은 기업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떠오른 지 오래다. 끝이 정해져있다는 명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부터 잡고보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더벨이 주요 기업의 만남과 이별 사이에 숨겨진 이해관계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5일 16: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발은 좋았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정부 주도의 빅딜이 한창 이뤄지던 1999년,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과잉투자로 위기에 몰렸던 한화그룹과 DL그룹(옛 대림그룹)이 자율 빅딜에 합의한다.경기고 선후배 사이인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999년 4월 양사의 나프타 분해센터(NCC)를 통합하기로 합의했고 8개월 뒤 여천NCC가 탄생했다. DL케미칼(옛 대림산업)과 한화솔루션(옛 한화석유화학)이 50%씩 자본금을 댔다.
특히 정부 개입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구조조정을 해야했던 다른 곳과 달리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두 오너의 대승적 결단...1999년 출범
당시 국내에 나프타분해공(NCC)을 가진 업체가 8곳으로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다. 수요 부진까지 겹치면서 생산시설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런 상황에서 비용을 연간 1000억원 가까이 절감할 수 있는 NCC 통합이 결정됐다. 결단을 내렸던 두 '회장님'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통합 2년이 채 되기 전인 2001년 노조 파업을 놓고 양사의 대응 방안이 엇갈리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자 잘 달래려 했던 DL그룹과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한화그룹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당시 DL그룹은 일부 신문에 이준용 명예회장 명의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께 드리는 공개 호소문'이란 광고를 게재했다. 내용은 '노조 스스로 아무 소리없이 정상화한다는데 딴지 걸지맙시다'였다. 가까스로 타협에 이르러 갈등은 봉합됐지만 양사가 본격적으로 틀어지는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로도 양사는 본사 이전, 인사권을 놓고 몇 차례 더 부딪쳤다. 2007년에는 인사권 문제로 양측 임직원의 고소고발 사태가 이어지는 등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 뒤로는 한동안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양측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지난해 초 발생한 여천NCC 폭발 사고가 합작법인의 단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결정 구조에서 양쪽의 기계적 균형만을 우선시하다 안전 및 보건과 관련한 대비가 늦거나 부족했다는 비판이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분할의 필요성을 양사 모두 크게 느꼈다고도 전해진다.
현재 양사는 분할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여천NCC 분할 논의는 이전에도 검토된 바 있지만, 이번의 경우 분할 논의가 보다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 투자 당시 설정한 계약 기간이 2024년 말이면 종료된다.
◇출범 때부터 안고 있던 갈등의 씨앗
갈등의 씨앗은 사실 출범 당시부터 있었다. '살길을 찾는다'는 목표는 일치했지만 실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는 부족했다. 양사 모두 NCC를 놓칠 수 없는 상황에서 빨리 합작법인을 세우다보니 가장 간단한 50대 50의 지분구조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이게 독이 됐다.
보통 합작법인을 설립할 때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일부러 균형을 깨는 51대 49의 지분율을 가져간다. 최근 23년 만의 동거를 끝낸 LS엠앤엠(옛 LS니꼬동제련)은 지분율이 LS 측 50.1%, JKJS 측 49.9%였다. 또 오너 일가가 대거 이사회에 참석하면서 보여지는 수치 이상으로 LS 측에 힘이 실렸다.
여천NCC 정관은 아예 이사의 수를 짝수로 한다고 못박아놨다. 양쪽의 의견이 엇갈리면 안건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조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한쪽에서 4명씩을 선임해 이사진 규모를 8명으로 유지했다. 양쪽에서 한명씩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공동대표 체제 역시 정관에 확실히 명시해뒀다. 균형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사회 소집권이 이사회 의장이 아닌 대표이사에게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이사회 의장이 소집권을 갖는다. 그러나 여천NCC는 이사회 의장을 양쪽에서 번갈아가면서 맡도록 하면서 의장이 아닌 공동대표에게 소집권을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장이 어느 쪽 인물이냐에 따라 한쪽은 소집권을 갖지 못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전체 임직원의 인력 구성은 반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출범 때 회사의 임직원은 900여명이었는데 DL 출신이 70%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진 등 최고위 경영진뿐만 아니라 임원 역시 양쪽이 절반씩 구성하기로 하면서 DL 출신들의 불만이 쌓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특히 두 회사의 기업문화도 달랐다. 여천NCC는 기존에 없던 조직이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기존 여수산업단지에 있던 양사의 생산시설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각각 DL과 한화에 몸담던 인력들이 하루아침에 여천NCC라는 새로운 지붕 아래 놓이게 됐다. 양사의 조직문화 차이는 앞서 노조 파업을 놓고 불거진 두 회장의 갈등만 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치 다른 1~4사업장, 분배에 긴 시간 걸릴 듯
보통 합작법인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아예 청산하는 수순을 밟는다. 다시 쪼개기엔 그 방법이나 과정이 여간 복잡하지 않은 탓이다. 최근 합작을 끝낸 LS엠앤엠이 좋은 사례다. ㈜LS는 지난해 9월 약 9300억원을 들여 일본 JKJS 컨소시엄이 가지고 있던 지분 49.9%를 매입하며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화그룹과 DL그룹 모두에게 석유화학사업은 주력 사업이자 핵심 사업이다. 지난해 실적이 큰 폭으로 악화되긴 했지만 업황 사이클에 따라 실적 개선 여지도 충분하다. 지난해를 제외하면 직전 4년(2018~2021년) 연평균 영업이익이 4428억원이었다.
배당도 무시하기 어렵다. 지난해와 올해는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2021년에는 모두 34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지급한 배당금을 모두 더하면 4조4300억원에 이른다.
이미 24년 동안 함께 운영했던 회사를 다시 쪼개는 작업은 당연히 쉽지 않다. 여천NCC는 4개 사업장에 모두 13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현재 1~4사업장을 각각 2개씩 가져가는 방안이 유력하다.
다만 가치 차이가 크다. 지난해 말 기준 장부가액을 살펴보면 1사업장이 4551억원, 2사업장이 1조282억원, 3사업장이 1435억원, 4사업장이 1818억원이다. 1~3사업장은 NCC와 벤젠·톨루엔·자일렌(BTX), 4사업장은 스티렌모노머(SM) 메틸부틸에테르(MTBE)을 각각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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