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은 지금]소송 분쟁 마무리, 추가 '쉰들러 리스크' 가능성은①손해배상금 완납으로 분쟁 마무리...지분 15.5% 보유한 쉰들러 다음 행보 주목
조은아 기자공개 2023-05-22 07:32:49
[편집자주]
'현대'라는 이름이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현대차그룹, HD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현대그룹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20년의 역사는 이름이 주는 영광과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최근 현대그룹은 10년에 걸친 쉰들러와의 소송을 마무리했다. 패소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전액 납부하면서 소송 리스크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실질적 지주사로 둔 지배구조에도 변함이 없다. 더벨이 현대그룹의 '지금'과 회사가 당면한 과제들을 면밀히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18일 10: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년 현대그룹은 말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경영권 방어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03년엔 시숙부, 2006년엔 시동생에게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쉰들러홀딩스를 끌어들였는데 쉰들러 역시 '적'이었다.최근 2014년부터 이어진 쉰들러와의 소송이 9년 만에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됐다. 판결 즉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손해배상금을 완납하면서 관련 리스크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현대그룹도 일단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경영권 리스크가 모두 사라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쉰들러는 20년간 끈질기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을 매각하고 손을 털고 떠나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현정은 회장, 배상금 완납으로 경영권 방어 성공
현대그룹은 과거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 현대상선(현 HMM)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차액정산옵션이나 TRS(Total Return Swap, 총수익스왑) 계약 등을 체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려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이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호시탐탐 노리던 쉰들러에게 공격의 빌미가 됐다. 쉰들러는 2014년 손실에 대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지난 4월 기습적으로 현정은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M캐피탈에서 거액을 빌려 배상금을 모두 갚았다. 자신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320만주(지분율 7.83%)와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433만주(10.61%)를 담보로 모두 2300억원을 빌렸다. 연 이자율은 12%, 기간은 4개월이다.
쉰들러는 배상금 확정 후 현 회장 지분을 상대로 강제집행에 나서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가져올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 회장이 배상금을 빠르게 완납하면서 길이 막혔다. 현 회장은 다시 한 번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M캐피탈은 현 회장의 상환 의지 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주식담보대출의 만기는 8월까지로 짧다. 현 회장은 재무적투자자(FI)를 유치하는 등 추가 자금을 조달해 대환할 것으로 보인다.
◇20년 장기 보유, 쉰들러의 '진짜' 목적은?
쉰들러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엘리베이터 기업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 주주로 등장한 건 2006년이다. 당시 KCC 등 범현대가가 보유했던 지분 25.5%를 확보해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줬다.
이 때에도 쉰들러가 경영권을 노리고 지분을 인수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양측은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며 부인했다. 쉰들러 회장은 현 회장을 스위스에 초대했고, 현 회장도 쉰들러 회장을 금강산에 초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쉰들러가 속내를 드러내면서 둘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했다.
쉰들러가 노리는 건 결국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이라는 게 업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불과 6일 만에 강제집행을 위한 집행문 신청에 나선 것만 봐도 쉰들러가 손실을 보전받는 것보다 경영권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엘리베이터 시장은 쉰들러가 충분히 탐낼 만하다. 매년 4만대가량의 엘리베이터가 새로 설치되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전국 엘리베이터 수는 80만대 규모로 세계 7위다. 유지 보수 시장도 상당한 규모다.
쉰들러도 국내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고 있다.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흡수합병해 쉰들러엘리베이터를 세웠다. 그러나 2016년부터 7년 연속 영업손실을 보는 등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쉰들러로선 시장 점유율 40%, 독보적 국내 1위 현대엘리베이터가 욕심날 수밖에 없다.
◇쉰들러 다음 행보에 쏠리는 시선
업계는 쉰들러의 추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여전히 지분율 15.5%로 최대주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쉰들러는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별개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 의사결정을 꾸준히 방해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주주총회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전문경영인의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해 정관에 '이사의 책임감경' 조항을 신설할 것을 시도했으나 쉰들러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쉰들러가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더라도 혼자서 회사를 흔들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특히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실시한 유상증자에 잇따라 불참하며 지분율이 뚝 떨어졌다. 한때 35%에 이르렀나 지금은 지분율이 15.5%에 그친다. 현 회장 측(26.6%)과 격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독 행동이 가능한 지분율도 아니다.
추가 지분 매입 가능성 역시 지금으로선 제한적이다. 쉰들러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주식수 421만6380주를 유지 중이다. 그간 유상증자에도 매번 불참했다는 점을 볼 때 지분율 확대 의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물론 변수는 있다. 오르비스인베스트먼트와의 지분 연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르비스는 2021년 처음 지분 5% 이상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현재 지분율은 6.61%,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다.
다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오르비스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오르비스가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으로는 한국금융지주, 키움증권, 다우데이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있다.
◇연이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의미는?
최근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사주를 소각하는 데에도 현재의 지분율로 어느 정도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취득한 자사주 172만2806주를 모두 소각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앞서 2020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163만2000주의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역시 3개월 만에 모두 소각했다.
2020년이나 이번이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을 당시 경영권 강화를 위해서라는 시선을 받았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6개월 이상 보유한 뒤 우호세력에 넘기면 의결권이 바로 살아나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엘리베이터는 2020년에 이어 이번에도 매입했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면서 그럴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다만 이를 경영권 방어와 완전히 떼어놓고 볼 순 없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가장 효과적인 주가 상승 재료다. 현 회장은 본인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전량과 본인이 최대주주인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전량을 담보(연대보증 포함)로 M캐피탈로부터 2300억원을 대출받았다.
M캐피탈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에 반대매매 조항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해당 대출의 만기가 짧은 만큼 추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주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현 회장뿐 아니라 현 회장의 어머니와 자녀들도 보유 중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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