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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도전과 과제]284조 협동조합 공룡의 시작은 산청 시골마을①1963년 하둔마을금고 첫 설립…갖은 부침 속 대표 상호금융기관으로 성장

김형석 기자공개 2023-05-30 08:10:28

[편집자주]

새마을금고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경남 작은 시골마을에서 시작한 새마을금고는 60년 만에 조합원 수 866만명 총자산 자산 284조원 규모 대한민국 대표 금융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금융시장 악재 속에서도 지역 기반 금융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더벨은 새마을금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새로운 60년을 전망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22일 15: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294곳, 조합원수 866만명, 총 자산 284조원. 새마을금고를 나타내는 숫자들이다.

새마을금고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557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기준 여신143조3211억원)과 수신액(186조3533억원) 등을 합한 총자산은 284조1702억원, 조합원 수는 866만2494명에 달한다. 여신과 수신액 규모는 국내 전체 상호금융기관 자산의 30% 수준에 달한다. 이는 국내 금융협동조합 중 1위, 전체 상호금융기관 중 농협에 이어 2위 규모다.

국내 최대 상호금융기관으로 성장한 새마을금고의 시작은 경남 산청 작은 마을에서 30여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하둔마을금고다. 이후 정부가 지역사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금고 설립을 지원하면서 전국으로 마을금고가 확산됐다.

새마을금고는 정부 주도로 시작했다. 새마을운동이 기본 정신이다. 초기 회장단은 관료들이 차지했다. 새마을금고는 숱한 금융 위기 상황을 모두 자체의 힘으로 극복했고 명실상부한 대형 금융사로 자리매김했다. 벤처 생태계에 자금을 공급하고 서민들의 금융 니즈를 해소해주는 역할도 한다. 새마을운동을 해외로 수출해 한국 금융과 혁신 사례를 수출하기도 한다.

새마을금고는 최근 부실대출과 횡령 사건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의 근본이 흔들릴 것이라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60년간 사업과 조직을 키워온 저력으로 또 다른 60년을 준비하고 있다.

◇ 2년 간 자산 40% 급성장…부동산·검찰수사는 악재

새마을금고 실적은 최근 3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말 209조1199억원 총자산은 2021년 242조568억원, 지난해 말에는 284조1702억원으로 성장했다. 2년 새 자산이 35.9%(75조503억원) 불어났다. 이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안에 총자산 300조원 돌파가 가능하다.

자산증대는 대부분 여신 확대를 통해 이뤄졌다. 같은 기간 전국 새마을금고의 여신잔액은 143조3211억원에서 201조6475억원으로 40.7%(58조3264억원) 늘었다. 늘어난 여신은 수익 확대로 이어졌다. 2020년 7801억원이던 전국 새마을금고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조5575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늘어난 자산과 조합원 유치로 중앙회 운영하는 신용공제사업의 수익도 매년 성장세다. 지난해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신용공제사업 당기순이익은 4668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성장했다. 중앙회의 신용공제사업 자금은 전국 새마을금고가 예치한 출자금을 기반으로 한다. 그만큼 중앙회 실적 확대는 전국 새마을금고의 수익 개선으로도 이어진다. 현재 중앙회가 운영중인 자산은 75조원에 달한다.

중앙회는 대형 LP로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LP 참여는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의 테일러메이드를 인수건이다. 중앙회는 조 단위 딜에 참여, 단기간에 딜 클로징까지 마무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 프리미어파트너스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프리IPO에 3000억원을 투자하는 과정에서도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앵커LP로 나섰다. SKIET는 이례적으로 프리 IPO 이후 7개월 만에 IPO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공격적인 여신 확대와 투자 기조는 리스크 노출로도 이어졌다. 기준금리 상승으로 부동산시장이 냉각되면서 지역 금고와 중앙회가 보유한 부동산 대출이 빠르게 부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새마을금고의 지난 1월 말 기준 건설·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은 9.23%를 기록했다. 1월 한달 만에 9000억원의 추가 연체가 발생하며 한 달 새 연체율이 1.56%포인트 급증했다. 부동산 관련 연체율은 2019년말 2.49%에서 3년여만에 9% 대까지 치솟았다.

중앙회의 투자 사업도 위기에 봉착했다. 검찰이 최근 중앙회의 비리 의혹에 연루된 자산운용사 등 관련자 2명의 주거지를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중앙회가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횡령과 배임 등 비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대체투자 규제 강화를 준비하면서 현재 중앙회는 일부 투자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새마을금고 모태 5개 마을금고

지금의 새마을금고는 전국구에 자산 규모도 웬만한 금융지주회사 수준으로 커졌다. 하지만 초기 새마을금고는 규모나 운용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새마을금고는 모태는 경상남도 5개 마을에서 시작했다. 이들 금고는 △산청군 생초면 하둔마을금고 △창녕군 성산면 월곡마을금고 △의령군 의령면 정암마을금고 △의령면 외시마을금고 △남해군 마산마을금고 등이다. 이들 금고는 1963년 5월부터 6월 한 달간 잇따라 설립됐다.

하둔마을금고의 설립을 주도했던 주요 인물은 오신영 씨였다. 1963년 당시 23세였던 그는 재건국민운동 경상남도 산청군지부 향토교육원 ‘부사’였던 김민한씨의 추천으로 부산에서 진행된 제3차 협동조합교도봉사회 교육을 수료했다. 이후 고향인 하둔리로 돌아온 그는 동네에서 가장 좌장이었던 권태선 씨와 함께 마을금고 설립을 추진했다. 설립 당시 등록한 회원은 35~50여명의 마을주민었다.
1963년 5월25일 첫 마을금고가 설립된 경남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하둔마을 전경. 사진=새마을금고중앙회

다음날에는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월곡마을에서 월곡마을금고가 탄생했다. 월곡마을금고의 이사장은 김형도 씨가 선출됐다. 이어 정암마을금고(6월3일)와 외시마을금고(6월9일), 마산마을금고(6월12일)가 잇따라 설립됐다.

이들 초기 마을금고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협동조합교도봉사회와 재건국민운동 경남지부다. 메리 가브리엘라 뮬헤린 수녀가 1962년 결성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는 캐나다의 성공한 협동조합운동인 안티고니시운동을 모태로 농촌금융조합 보급을 목적으로 강습회를 진행했다.

재건국민운동본부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장기적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범국가적인 의식개혁을 위해 만든 정부조직이다. 재건국민운동본부의 목표는 자립정신으로 향토를 개발해 새로운 사회기풍 확립이었다.

재건국민운동본부 입장에서 농촌민의 자립과 경제적 지원 기금 마련을 목표로 하는 마을금고 설립은 눈에 띄는 사업이었다.

재건국민운동은 재건국민운동중앙회의 소관업무가 내무부로 이관되고 1975년 12월 해체됐다. 하지만 이후 범국가적 차원의 근대화운동인 새마을운동에서 이를 계승했다.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표준사업으로 마을금고사업을 채택하고 ‘새마을사업으로 설치하는 마을금고’의 약칭으로 '새마을금고'가 시책상의 용어로 사용했다. 그 후 1982년 12월 31일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되며 기반을 다졌다.

◇ 정부주도 사업 한계…연합회 발족 시발점

새마을금고가 성장만을 지속한 것은 아니다. 정부가 마을금고 사업을 기본사업으로 지정하면서 비인가 마을금고가 급증했다. 신용협동조합법을 악용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상의 마을금고가 우후죽순 생긴 것이다.

그 결과 1973년 12월 전국 마을금고수는 2만5841개 (회원 129만 1900명, 자산 127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법인설립 인가를 받고 미처 설립등기를 마치기도 전에 청산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재건국민운동중앙회가 나서 법인화를 주도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당시 법인화율은 전체 금고의 4%였다.

새마을금고의 모태였던 5대 마을금고 역시 열악한 환경 탓에 운영을 이어가지 못했다. 초창기 설립된 금고는 지리적인 취약성과 마을 인구 감소에 따른 자본금 부족, 초기 운영미숙 등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첫 마을금고인 하둔마을금고는 설립 10여년 만인 1970년대 문을 닫았다. 월곡마을금고는 1981년 말 총회를 통해 해산됐다. 현금출자와 절미저축, 공동의 노동을 통한 수익 출자 등을 방법으로 기금을 모아 운영했지만 거주인구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정암마을금고와 외시마을금고는 각각 1966년과 1969년 문을 닫았다. 마산마을금고는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1970년대에 해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결성된 것이 마을금고연합회(현 새마을금고중앙회)다. 1973년 전국의 마을금고의 자금관리 지원과 교육을 담당하는 마을금고연합회(현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창립됐다. 초대 회장은 문교부장관으로 재건국민운동중앙회장을 역임한 안호상 씨가 맡았다. 연합회는 지역 마을금고의 법인화를 통해 부실 금고 지원에 대한 자금과 교육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했다.

연합회의 법인화 효과는 1976년 이후 본격화됐다. 1975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가 해체되면서 연합회가 마을금고 운영 권한을 부여받은 이후다. 이때 연합회는 법인화를 위해 준마을금고 등록지침을 제정했다. 이는 ‘미인가금고’란 명칭을 ‘준마을금고’로 변경하고 마을금고 운영의 내실과 회계관리의 적정여부를 3등급으로 판정해 육성, 지도할 마을금고와 정리할 마을금고를 구분하는 자료로 활용했다. 1976년에는 전국 시도 및 시군구별 마을금고연합회 지부를 모두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신용협동조합법 시행령을 개정 작업도 이뤄졌다. 시행령에는 정부는 재무부장관 소관의 마을금고 설립인가권 및 지도감독권을 지방장관에게 위임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시행령은 1983년 1월 시행된 새마을금고법의 모태가 됐다.

그 결과 1974년 830곳에 불과하던 법인화 금고수는 △1977년 1300곳 △1978년 1763곳 △1979년 2,763곳 △1980년 4019곳 △1981년 4429곳 △1982년 4574곳△1983년 4286곳으로 늘었다. 1983년에는 법인금고수가 처음으로 미인가금고수(1074곳)을 앞질렀다.

상호금융 관계자는 "새마을금고가 현재까지 공적자금 지원 없이도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자체적인 중앙조직을 구성해 지도관리를 해온 다년간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며 "최근 겪고 있는 부동산PF와 대체투자 문제 역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새마을금고 내부부터의 개혁이 필요할 것"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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