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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준신탁' 실패의 기억 [thebell note]

정지원 기자공개 2023-07-10 07:51:37

이 기사는 2023년 07월 05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시공사의 정비사업 수주만큼이나 신탁사의 재개발·재건축 참여 소식이 줄을 이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2016년 제도가 도입됐다. 7년 만에 최대 호황을 맞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정부에서도 규제 완화에 방점을 두고 밀어주고 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신탁사 특례'는 신탁방식 정비사업 도입 시 사업 단계를 간소화하는 게 골자다. 사업 소요기간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업계에선 다양한 장점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먹거리가 부족해진 신탁사'와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정부'가 만나면서 시작됐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조합 입장에서 따지고 보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실제 사업기간 단축에 효율적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사업지 토지등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작업만 해도 하세월이다.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 등기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아무리 새 아파트 입주가 빨라져도 집주인 권리를 내놓는 선택은 쉽지 않다.

이 기간 동안 늘어나는 리스크를 조합이 짊어질 가능성도 크다. 신탁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려면 토지등소유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발생한 매몰비용은 신탁재산으로 부담해야 한다. 주민들이 맡긴 토지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내놓은 안은 사업단계 축소와 표준계약서 도입 수준에 그친다. 실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소재를 가리고 매몰비용 전가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이미 한차례 신탁사가 자신 있게 판을 벌인 사업이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은 신탁사의 새 먹거리이자 시공사의 리스크 헤지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건설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그 리스크가 차입형 토지신탁 만큼이나 크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상태다.

과거 시공사와 신탁사가 맺은 계약 관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현재 책임준공 미이행 따른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사례가 속출하는 게 아니다. 제도의 미비점이 있었고 선례가 없었던 탓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신탁사가 근래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선 정비사업들이 향후 조합과 신탁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조합과 신탁사 모두의 밝은 미래처럼 그려지고 있다.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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