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7월 31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M&A가 '종합 예술'이라는 정의는 진부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이 표현만큼 M&A가 지닌 역동성과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수식어도 없다. 개인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종합 예술 관점에서 보자면 2011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현대건설 M&A'만큼 이에 부합하는 사례도 없을 듯하다.현대건설을 차지하기 위한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피 튀기는 인수 경쟁은 아직까지도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다. 복마전을 방불케 한 이전투구와 첩보 영화를 보는 듯 했던 정보전, 현대그룹의 우협 선정 그리고 연이어 터진 자금 조달 이슈, 채권단의 우선협상대상자 교체 결단, 현대차그룹의 9회말 대역전 등 진행 과정 하나하나가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법했다.
현대건설 M&A는 결국 '현대가 적통' 경쟁이었고 시장에서는 범현대가의 이 무서운 집념에 주목했다. 앞서 2009년 범현대가 매물이었던 '현대종합상사'가 시장에 나왔을 때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다. 많은 후보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인수 전제 조건이 있었다. 만약 범현대가 인수 후보가 등장한다면 무조건 딜을 포기하겠다고. 실제 당시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 품에 안겼다. 재계가 느끼는 현대 이름값과 무게감이 그 정도였다.
최근에도 여러 사정 때문에 투자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범현대 기업들이 적지 않다. 현대엘리베이터와 HMM이 대표적이다. HMM의 전신은 바로 현대상선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연이 깊다. 현대그룹이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충당하면서 M&A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올 즈음 자연스럽게 시장의 이목은 현대차그룹에 쏠렸다.
범현대 맏형으로서의 명분, 현대건설과의 시너지, 풍부한 자금력 등 누가 봐도 멋진 그림이 그려졌다. 실제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간 일부 소통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현대차그룹의 대답은 'No'였다.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입에 필요한 2000억원 가량의 자금은 큰 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 같은 선택을 한 걸까.
이는 현대차그룹 승계 이슈와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으며 명실상부 1인자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지배력에 허점이 많다. 현대차그룹은 10대 기업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려 했으나 엘리엇과 글로벌 의결자문사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궁극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순환고리를 끊고 지주사를 세워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주사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2018년 실패를 통해 정 회장은 깨달은게 있다. 바로 주주들의 동의 없이는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범현대가 M&A는 자칫 주주들에게 주주가치 제고가 아닌 인심 베풀기 혹은 집안 명분 쌓기로 곡해될 수 있다. 이는 향후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반대파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HMM은 딜 사이즈만 5조원에 육박한다. 주주들을 설득할 만큼의 전략 방향성이 없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근 들어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정 회장 입장에선 이보다 시장에 정의선 체제의 당위성과 명분을 각인시키는 방법도 없다. 각종 변수에 노출돼 있는 M&A보다는 훨씬 더 영리한 판단이다.
정 회장은 더 이상 적통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주주들의 결속을 다지면서 승계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물론 언제든 범현대가 매물 인수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다만 시장을 설득할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면 정중동 행보는 계속될 듯하다. 실리가 최우선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 경영자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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