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기업 피어그룹 전략]에코프로머티리얼즈, 왜 '고밸류' 논란에 휩싸였나③비교기업에 전구체 아닌 양극재 기업 픽…'시가총액' 우선순위 선별
손현지 기자공개 2023-11-22 07:48:52
[편집자주]
2차전지 관련 회사들이 기업공개(IPO)에 나서고 있다. 전방산업에 있는 배터리 회사부터 후방산업인 부품·소재 회사까지 생태계가 확장되면서 자금조달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마다 IPO 준비 과정에서 피어그룹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태동하는 산업인 만큼 선구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거나 독점적 지위를 지닌 경우가 많아 비교군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올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증시입성을 준비했던 2차전지 섹터 기업 8곳을 추려 피어그룹 선정 전략과 특징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4일 09: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지난 9월 기업공개(IPO) 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던 기업이다. 당초 사측에서 제시했던 공모 희망밴드는 3만6200~4만4000원, 예상 시가총액은 2조5700억~3조2700억원에 달했다. 밸류는 올해 IPO 최대어로 평가받았던 두산로보틱스(1조6000억원)의 두 배에 달할 정도다.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고평가 지적을 받을 때마다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던 게 바로 피어그룹이다. 피어그룹인 포스코퓨처엠이나 코스모신소재 등은 상반기 주가가 300~400% 급등한 '2차전지 대장주'들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주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은 모두 양극재 기업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양극재의 원료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기업인데도 동일선상에서 비교집단으로 묶였다. 상장 주관사단이 모집단을 추리는 첫 단계부터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들을 우선순위로 하는 전략을 세운 탓이다.
원래 '사업 유사성' 측면을 고려해 필터링해야 맞지만,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최초의 전구체 상장 도전기업이라 비슷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상장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피어그룹 선정과정에서 기업의 주관성이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전구체 기업인데 양극재 기업을?…'주관적' 필터링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에코프로그룹의 하이니켈 전구체 생산 자회사다. 국내에서 전구체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이자 첫 상장사례였다. 그러다보니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은 신고서 작성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비교할 만한 기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증권사 IB와 기업 CFO의 주관적인 판단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1차 모집단을 선정하는 단계부터 2차 '사업유사성' 검토 단계까지 자체적인 검토 기준을 설정해야 했던 것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다른 2차전지 섹터 기업들처럼 4단계 '톱다운' 방식으로 필터링해나갔다. '모집단 선정→사업유사성→재무유사성→일반유사성' 등 순서대로 추려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차 모집단 선정 과정에서 딱 떨어지는 산업군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바로 다음 순서에서 사업유사성을 기준으로 한번 더 검토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1차 모집단 선정 때는 가장 먼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에는 과거 광산업에서 시작해 '전구체' 사업의 시장 지위를 지금까지 이어온 기업들이 꽤나 있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Bloomberg)와 크레딧솔루션 등 자료를 참고해 해외 전구체 업체들을 리스트업해 총 5곳(CNGR, GEM, Huayou Cobalt, Guangdong Fangyuan, Zhejiang Power 등으로)을 추렸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려면 국내 비교회사들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주관사단과 에코프로 CFO는 논의 끝에 모집단을 전방산업인 '양극재' 기업으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 부분이 첫번째 주관성이 투영된 부분으로 지목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하이니켈 전구체 사업만을 영위한다. 화학 업체나 여타 셀 업체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IPO에 가담한 한 관계자는 "전구체가 양극재 성능의 상당한 부분을 좌우한다는 점, 직접적인 밸류체인에 속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양극재 기업들도 리스트업 했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시장조사기관 자료에 의거해 글로벌 주요 양극재 상위 순위 20곳을 리스트업했다. 그 중 국내 기업이었던 6개 기업(에코프로비엠, 엘지화학,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삼성SDI, 코스모신소재)을 모집단에 포함시켰다. 앞서 추린 해외 전구체 기업 5곳과 더불어 총 11개의 모집단을 추린 것이다.
◇SK, 삼성, LG 납품해야…"사실상 시가총액이 기준"
2차 검토 과정에서는 '사업 유사성'을 기준으로 또 한번 필터링에 나섰다. 여기서 반영한 기준은 최상급 셀 업체 5개사(SK온,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CATL, Panasonic)에 대한 납품이력 여부다.
기준 설정의 '근거'는 이렇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매출 90%는 에코프로비엠에서 나온다. 에코프로비엠의 주 고객사인 SK온과 삼성SDI의 셀 내에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전구체가 탑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기준 하에 위와 같은 기준을 설정했다.
이 기준에 맞춰 지목된 국내 기업들은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코스모신소재 등 4개사다. 여기서 에코프로비엠은 계열회사라는 점 때문에 4단계 필터링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사실상 3단계 재무적 검토에 나서기도 전에, 2단계 필터링 과정에서 주요 피어그룹이 모두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표면적으로 보면 '최상급 셀업체와 거래하는 양극재 업체'들을 픽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피어그룹을 설정한 거나 다름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포스코퓨처엠과 코스모신소재는 연내 주가가 최대 372%, 393%씩 급증한 회사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전구체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상장사가 없었기에 자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는 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긴 하다"며 "하지만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들을 피어그룹으로 설정하다 보니 밸류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시장의 우려 속에 흥행에 실패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은 17.2대 1로 올 들어 상장을 추진한 기업 중 가장 낮았다. 최종 공모가는 희망 공모 밴드(3만6200~4만4000원) 최하단인 3만6200원에 확정됐으며 시가총액은 2조4698억원에 그치게 됐다. 오는 17일 증시 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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